<PD수첩> 오역논란이 다시 광우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와 관련해 두 달여 전에 김우재 박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박사 후 과정 연구원)로부터 기고받았던 글(시사IN 37호)이 생각나 본인의 양해를 얻어 <독설닷컴>에 게재합니다.
저는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했을 때, <PD수첩> 비판을 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1)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다.
2) 미국의 쇠고기 도축 시스템은 완벽하다.
3) 우리의 검역 체계는 완벽하다.
이중 1)이 증명 되면 2)3)은 필요 없는 것이고, 1)이 증명되지 않으면 2)3)이라도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PD수첩>을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PD수첩>이 문제제기 하는 내용이 이 세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이 번개에 맞을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아마 사는 동안, 몇 대에 걸쳐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개에 맞을 확률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뢰침을 답니다.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대로 된 피뢰침이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런데 피뢰침을 파는 사람의 말만 듣고 그 피뢰침이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검증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우너소가 도축되는 양상을 보고 <PD수첩>은 미국의 도축 시스템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피뢰침을 파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는 우리에게 파는 물건과는 다른 더 좋은 피뢰침을 달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쓰지 않는 피뢰침을 우리에게 파는 것이지요. (30개월 이상 수입 문제와 SRM 부위 기준 변경 등이 이에 해당하겠지요)
언론의 기능 중 중요한 기능은 바로 감시 기능입니다. 비록 그 확률이 낮더라도 위험이 있다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의 자세라고 봅니다. 어찌되었건 광우병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아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게재합니다.
프리온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묻다
김우재 박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박사 후 과정 연구원)
정부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라고 강조한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과학 논란으로 뜨겁다. 2005년에는 ‘실험 조작’ 사건으로 전국민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번에는 ‘과학적 증거’ 유무로 국익이 판가름 나는 사건이 터진 듯하다. ‘과학적 증거’라는 말이 언론을 휩쓴다. 뚜렷한 출처도 없이 장관 입에서 과학적 증거라는 말이 반복된다. 도대체 어떤 증거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과학적 증거란 제시되기만 하면 두말할 수 없는 법관의 판결문 같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시중에 떠도는 과학적 증거의 본질은 과학자가 이야기하는 그것과 의미가 다르다. 따라서 신중한 판단 없이 과학적 증거를 일종의 종교로 악용하는 이들은 무지하거나 혹은 과학을 욕보이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과 광우병 파동. 이 두 사건의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과학자의 성과를 발표한 논문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과학의 특징 중 하나인 ‘재현 가능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현 가능성’ 혹은 ‘reproducibi lity’는 시공과 남녀노소를 초월해 재현되는 과학적 실험 결과를 말한다. 뉴턴의 이론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와 양자 수준의 물체에 적용되지는 못하지만, 그가 행했던 실험 결과는 여전히 ‘재현 가능’하다. 이러한 실험 증거는 과학 이론의 토대가 된다.
장관은 ‘과학적 증거’의 의미를 아는가?
DNA가 유전물질임을 밝힌 알프레드 허시의 말처럼, 아이디어(이론)는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지만, 실험의 결과는 영원한 것이다. 재현 가능하지 않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세워진 이론은 언젠가 무너진다. 과학자는 의심 많고 거기에 더해 호기심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위에 기대 발표한 논문이라도 시간이 지난 뒤 재현되지 않으면 그 논문은 (그것이 사기이든 아니든) 조용히 기억 속에서 잊힌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경천동지하게 만든 논문 중 수십 년 이상 살아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그 사라진 논문이 모두 거짓은 아니다. 과학 실험의 결과도 사람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며 오류가 존재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과학이 객관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이 ‘절대 객관’이라는 종교로 기능할 수는 없다. 다만 과학은 우리가 느낌과 눈대중으로 얼버무리는 사건에 ‘정량적’ 신뢰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양으로 표시된 사건은 인간의 두뇌에 좀더 신뢰를 준다. 하지만 양으로 표시된 사건의 ‘해석’은 또 다른 문제다. 광우병 파동에서 언급되는 ‘과학적 증거’의 의미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과학적 증거의 해석’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첫째, 과학적 증거의 ‘이론적 해석’에 관한 문제이며 둘째, 과학적 증거의 ‘실용적 해석’에 관한 문제다.
모든 과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연과학은 실험을 토대로 발전한다. 실험이라는 것은 통제된 상황에서 특정 사건을 양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이다. 실험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천문학처럼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별과 성운을 연구하는 학문은 관찰을 토대로 이론을 구축한다. 따라서 천문학 발전은 망원경이라는 도구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생물학처럼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은 ‘조작(operation)’을 통해 실험적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관찰은 수동적 실험이고 조작은 능동적 실험이다.
실험실에서 ‘조작’을 통해 실험할 수 없는데도 과학으로 인정되는 사례는 많다. 최초의 고생물학은 분자생물학 같은 실험이 불가능했다. 화석을 해석하는 문제는 과학자의 관찰 결과와 주어진 맥락을 이용한 추론 작업이었다. 방사성 연대 측정법이 개발되고 다양한 도구가 개발되면서 고생물학의 증거는 단단해졌고, 현재 그 누구도 고생물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단세포생물로부터 진화했는가 하는 문제는 진화론의 핵심 이론이다. 하지만 그 이론을 DNA가 유전물질임을 보이는 이론처럼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상식적이고 단순한 이론을 찾는다. 또한 분자생물학의 실험처럼 조작이 불가능한 대상을 다루는 진화학의 이론은 수학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한다.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는 길은 이처럼 다양하다.
프리온은 종간 장벽 뛰어넘어 전파된다
광우병, 정확히 말해 우뇌해면증(BSE)이라 불리는 이 병의 원인 물질은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로 추정된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광우병을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과연 소의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론적으로만 말하면, 전염 문제에 관한 실험은 가능하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에서 프리온을 추출한 뒤 그것을 인간에게 먹이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진화론의 문제와는 달리 원칙적으로 ‘조작’이 가능한 실험이지만, 사회적으로 불가능한 실험이다. 인간 복제가 문제 되는 것과 같은 선상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광우병과 같은 전염병 인자에 관한 실험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이나, 발생한 환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증거를 모으고 이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조작’ 실험과 ‘관찰’ 실험이라는 실험 방법 중 ‘조작’ 실험을 통해 확보된 이론의 신뢰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월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다양성의 문제다. 이를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작 실험을 통해 확보된 이론의 수명이 더 길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론은 영원하지 않다. 이론은 잠정적이다.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문제는 직접 조작 실험이 불가능한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세워진 이론은 언젠가 좀더 정확한 증거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증거는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이다. 영국에서 발생한 인간광우병을 사례로 들고 싶겠지만 그 사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조작’을 통한 직접적 과학 증거로 봉사하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침팬지를 이용한 변형 크로이펠츠 야코프병(vCJD)에 관한 실험은 없다.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은 돈이 많은 재단이나 국가 단위에서나 가능하다. 생물학에서 침팬지 다음의 모델 동물은 생쥐다. 그리고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지닌 유전자변형 생쥐를 이용한 실험 사례는 BSE에서 유래된, 즉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유래된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제 이러한 실험의 이론적 해석 문제가 불거진다. 지금까지 나온 증거 가운데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유래된 프리온 단백질을 장으로 섭취했을 때 인간광우병이 발병한다는 직접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증거를 토대로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어도 인간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따라서 과학적 증거에 따라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러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나온 증거는 진화론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다. 아래와 같이 병렬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박테리아가 인간이 된다는 실험실 내에서의 직접적 ‘조작’ 실험의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2. 광우병에 걸린 소의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되어 인간광우병을 유발한다는 실험실 내에서의 직접적 ‘조작’ 실험의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염의 위험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광우병에 관한 이론적 해석의 문제는 정황적 증거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어도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라는 ‘예·아니요’ 식의 극명한 대답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논쟁을 종결지을 만한 진정한 ‘과학적 증거’가 등장하거나 축적되기 전까지 ‘과학적 증거’를 빌미로 함부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착각이다.
화석상의 증거나 유전자 간의 상동성은 모두 진화론을 떠받치는 증거이다. 직접적인 실험 증거 없이 어떤 이론을 확립하고자 할 때 과학자는 실용적 해석을 선호한다. 오캄의 면도날로 유명한 단순성의 원리가 적용되기도 하고 초자연적 원리보다는 자연적 원리를 선호하는 소박한 상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의 진화를 논할 때 창조론자와 부딪치게 되는 갈등의 시작이고 또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실험실에서의 조작 실험을 통한 직접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이론은 모두 이와 같은 운명을 지닌다.
직접 증거가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실용적으로 그 증거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이론은 그다지 절대적이지 못하다. 광우병의 경우처럼 인간으로의 전염성을 증명하는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를 세심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도 단칼에 이것이 과학적 증거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는 것이다.
광우병의 위험은 광우병을 유발하는 프리온이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전파된다는 데 있다. 적어도 다양한 종의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생쥐를 이용한 실험실 내에서의 실험은 이미 종간 장벽이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생쥐는 인간 프리온 단백질의 주입에 의해 인간과 유사한 병에 걸리고,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주사한 침팬지에게서는 인간과 똑같은 병증이 유발되는 것은 자명하다. 입으로 섭취하는 것이 전염도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고농도의 섭취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광우병의 또 다른 특징은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발생한 쿠루(kuru)는 50년이 지난 뒤에 발병되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오랫동안 먹은 영국에서의 사례를 오랜 기간 관찰해보지 않는 이상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직 없다. 분명한 것은 광우병의 원인 물질이 한때는 ‘슬로 바이러스(slow virus)’라고 불렸을 정도로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실용적 해답은 ‘위험할 수 있다’가 되어야지 ‘위험하지 않다’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프리온이 고농도로 집중된 부위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것이 광우병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려야 하는 실용적 해석은 어느 부위를 먹든지 연령이 오래된 소와 동물성 사료로 키워진 소는 ‘위험할 수 있다’가 되어야지 ‘위험하지 않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쇠고기 협상단의 ‘과학적 무식’
전자(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후자(위험하지 않다)는 ‘단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후자의 말을 가능태로 바꾸면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가 되는데, 이는 어떤 경우이든 무책임한 발언이다. 현재 과학적 증거를 내세우며 수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위험하지 않다’라는 단정이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는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는 집단이다. 과학에서 단정은 몇 가지 경우에만 한정된다. 그러한 것을 ‘법칙’이라 부른다. 만약 광우병 사태에 대해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 증거라 불리는 것을 이용한 해석이라면, 우리는 현재 ‘가능태’로 표현할 수 있는 말 외에는 가진 게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적 증거’라는 말을 오용하는 장관의 태도는 무책임하다. 현재의 과학적 증거는 수입을 허용할 만큼 ‘단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문제는 열려 있으며, 과학계의 논쟁 중 하나이며, 따라서 잘 확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자의 태도이다. 따라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고자 할 때 과학적 증거를 사용하는 이들의 태도는 잠정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 ‘과학적 증거’를 마치 이미 결판이 난 결투처럼 생각하고 협상에 임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무지의 소치이며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오용이고 모욕이다. 과학적 증거를 실용적으로 해석하고자 할 때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과학적 증거’를 운운하는 이들이 신경 썼어야 하는 것은 국익과 국민 건강의 문제일 뿐 ‘과학적 증거’로 무엇인가를 결론짓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적 증거’라는 말로 과학을 종교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학적’이라는 말이면 무엇이나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과학적 증거는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여유를 제공할 뿐, 무엇을 결정하게 하는 만능 상자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에 무슨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며, 친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과학’이 아니라 ‘상식’이다.
위에서 논했듯 정부 담당자들이 이야기하는 ‘과학적 증거’는 우리에게 그 어떤 ‘과학적’ 결론도 내려주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그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닌 국익의 문제로 환원된다. 성난 시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국익과 건강권의 문제다. 광우병 괴담이 퍼지는 것을 토대로 또다시 ‘과학적 증거’를 논하는 것은 오류다. 애초에 ‘과학적 증거’란 그런 사태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돗물을 통해 광우병이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공기를 통해 전파될 가능성보다는 크다.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의 과학적 무지를 질타하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얼마나 과학적인지 되묻고 싶다. 과학자인 나는 괴담의 허무맹랑함에 가벼운 미소를 날릴지언정 이를 토대로 과학적 무지를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증거’를 운운하는 협상 담당자의 과학적 무지가 국익으로서는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했듯이 민중은 사태를 정확히 본다. 이토록 현명한 민중을 지녔기에 이 땅에 민주화가 가능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과학을 잣대로 사태를 오용하는 세력을 과학자인 나는 용서하기 힘들다. 굳이 내게 결정하라면, 나는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는 비과학적 행위보다 ‘과학적 증거’를 오용한 협상 당사자들의 비과학적 태도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증거’를 오용한 자 용서 못해
소 곱창구이를 좋아하는 나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도 소 곱창구이를 먹을 것이다. 하지만 광우병에 걸렸을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해도 좋은가를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다. 이것은 광우병이라는 질병의 실체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벌일 수 있는 한 과학자의 객기와, 국익이 걸린 문제를 다룰 때 생기는 신중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능성은 열려 있고 과학적 증거를 해석하는 문제도 열려 있다. 누구도 그것을 단정지을 수 없다. 그것은 국익과 국민의 건강과 또한 상식의 문제다.
과학적 증거란 양날의 칼이다. 절대적 객관성이라는 과학의 이미지가 이제 좀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주관적이며 과학적 증거란 없다는 무지한 발언을 이제는 좀 거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과학도 상식에서 출발하며, 과학자도 사람이며, 따라서 과학도 불완전함을,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신뢰를 제공하는 학문임을 이제는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과학자는 슬프다.
※ 광우병에 관한 증거들은 가장 최근 리뷰된 과학 논문을 참고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