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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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오역논란이 다시 광우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와 관련해 두 달여 전에 김우재 박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박사 후 과정 연구원)로부터 기고받았던 글(시사IN 37호)이 생각나 본인의 양해를 얻어 <독설닷컴>에 게재합니다.


저는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했을 때, <PD수첩> 비판을 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1)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다.


2) 미국의 쇠고기 도축 시스템은 완벽하다.


3) 우리의 검역 체계는 완벽하다.


이중 1)이 증명 되면 2)3)은 필요 없는 것이고, 1)이 증명되지 않으면 2)3)이라도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PD수첩>을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PD수첩>이 문제제기 하는 내용이 이 세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이 번개에 맞을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아마 사는 동안, 몇 대에 걸쳐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개에 맞을 확률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뢰침을 답니다.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대로 된 피뢰침이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런데 피뢰침을 파는 사람의 말만 듣고 그 피뢰침이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검증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우너소가 도축되는 양상을 보고 <PD수첩>은 미국의 도축 시스템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피뢰침을 파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는 우리에게 파는 물건과는 다른 더 좋은 피뢰침을 달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쓰지 않는 피뢰침을 우리에게 파는 것이지요. (30개월 이상 수입 문제와 SRM 부위 기준 변경 등이 이에 해당하겠지요)


언론의 기능 중 중요한 기능은 바로 감시 기능입니다. 비록 그 확률이 낮더라도 위험이 있다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의 자세라고 봅니다. 어찌되었건 광우병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아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게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리온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묻다

김우재 박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박사 후 과정 연구원)


정부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라고 강조한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과학 논란으로 뜨겁다. 2005년에는 ‘실험 조작’ 사건으로 전국민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번에는 ‘과학적 증거’ 유무로 국익이 판가름 나는 사건이 터진 듯하다. ‘과학적 증거’라는 말이 언론을 휩쓴다. 뚜렷한 출처도 없이 장관 입에서 과학적 증거라는 말이 반복된다. 도대체 어떤 증거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과학적 증거란 제시되기만 하면 두말할 수 없는 법관의 판결문 같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시중에 떠도는 과학적 증거의 본질은 과학자가 이야기하는 그것과 의미가 다르다. 따라서 신중한 판단 없이 과학적 증거를 일종의 종교로 악용하는 이들은 무지하거나 혹은 과학을 욕보이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과 광우병 파동. 이 두 사건의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과학자의 성과를 발표한 논문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과학의 특징 중 하나인 ‘재현 가능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현 가능성’ 혹은 ‘reproducibi lity’는 시공과 남녀노소를 초월해 재현되는 과학적 실험 결과를 말한다. 뉴턴의 이론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와 양자 수준의 물체에 적용되지는 못하지만, 그가 행했던 실험 결과는 여전히 ‘재현 가능’하다. 이러한 실험 증거는 과학 이론의 토대가 된다.


장관은 ‘과학적 증거’의 의미를 아는가?


DNA가 유전물질임을 밝힌 알프레드 허시의 말처럼, 아이디어(이론)는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지만, 실험의 결과는 영원한 것이다. 재현 가능하지 않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세워진 이론은 언젠가 무너진다. 과학자는 의심 많고 거기에 더해 호기심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위에 기대 발표한 논문이라도 시간이 지난 뒤 재현되지 않으면 그 논문은 (그것이 사기이든 아니든) 조용히 기억 속에서 잊힌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경천동지하게 만든 논문 중 수십 년 이상 살아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그 사라진 논문이 모두 거짓은 아니다. 과학 실험의 결과도 사람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며 오류가 존재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과학이 객관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이 ‘절대 객관’이라는 종교로 기능할 수는 없다. 다만 과학은 우리가 느낌과 눈대중으로 얼버무리는 사건에 ‘정량적’ 신뢰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양으로 표시된 사건은 인간의 두뇌에 좀더 신뢰를 준다. 하지만 양으로 표시된 사건의 ‘해석’은 또 다른 문제다. 광우병 파동에서 언급되는 ‘과학적 증거’의 의미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과학적 증거의 해석’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첫째, 과학적 증거의 ‘이론적 해석’에 관한 문제이며 둘째, 과학적 증거의 ‘실용적 해석’에 관한 문제다.


모든 과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연과학은 실험을 토대로 발전한다. 실험이라는 것은 통제된 상황에서 특정 사건을 양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이다. 실험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천문학처럼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별과 성운을 연구하는 학문은 관찰을 토대로 이론을 구축한다. 따라서 천문학 발전은 망원경이라는 도구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생물학처럼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은 ‘조작(operation)’을 통해 실험적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관찰은 수동적 실험이고 조작은 능동적 실험이다.


실험실에서 ‘조작’을 통해 실험할 수 없는데도 과학으로 인정되는 사례는 많다. 최초의 고생물학은 분자생물학 같은 실험이 불가능했다. 화석을 해석하는 문제는 과학자의 관찰 결과와 주어진 맥락을 이용한 추론 작업이었다. 방사성 연대 측정법이 개발되고 다양한 도구가 개발되면서 고생물학의 증거는 단단해졌고, 현재 그 누구도 고생물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단세포생물로부터 진화했는가 하는 문제는 진화론의 핵심 이론이다. 하지만 그 이론을 DNA가 유전물질임을 보이는 이론처럼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상식적이고 단순한 이론을 찾는다. 또한 분자생물학의 실험처럼 조작이 불가능한 대상을 다루는 진화학의 이론은 수학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한다.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는 길은 이처럼 다양하다.


프리온은 종간 장벽 뛰어넘어 전파된다


광우병, 정확히 말해 우뇌해면증(BSE)이라 불리는 이 병의 원인 물질은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로 추정된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광우병을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과연 소의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론적으로만 말하면, 전염 문제에 관한 실험은 가능하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에서 프리온을 추출한 뒤 그것을 인간에게 먹이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진화론의 문제와는 달리 원칙적으로 ‘조작’이 가능한 실험이지만, 사회적으로 불가능한 실험이다. 인간 복제가 문제 되는 것과 같은 선상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광우병과 같은 전염병 인자에 관한 실험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이나, 발생한 환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증거를 모으고 이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조작’ 실험과 ‘관찰’ 실험이라는 실험 방법 중 ‘조작’ 실험을 통해 확보된 이론의 신뢰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월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다양성의 문제다. 이를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작 실험을 통해 확보된 이론의 수명이 더 길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론은 영원하지 않다. 이론은 잠정적이다.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문제는 직접 조작 실험이 불가능한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세워진 이론은 언젠가 좀더 정확한 증거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증거는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이다. 영국에서 발생한 인간광우병을 사례로 들고 싶겠지만 그 사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조작’을 통한 직접적 과학 증거로 봉사하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침팬지를 이용한 변형 크로이펠츠 야코프병(vCJD)에 관한 실험은 없다.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은 돈이 많은 재단이나 국가 단위에서나 가능하다. 생물학에서 침팬지 다음의 모델 동물은 생쥐다. 그리고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지닌 유전자변형 생쥐를 이용한 실험 사례는 BSE에서 유래된, 즉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유래된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제 이러한 실험의 이론적 해석 문제가 불거진다. 지금까지 나온 증거 가운데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유래된 프리온 단백질을 장으로 섭취했을 때 인간광우병이 발병한다는 직접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증거를 토대로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어도 인간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따라서 과학적 증거에 따라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러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나온 증거는 진화론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다. 아래와 같이 병렬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박테리아가 인간이 된다는 실험실 내에서의 직접적 ‘조작’ 실험의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2. 광우병에 걸린 소의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되어 인간광우병을 유발한다는 실험실 내에서의 직접적 ‘조작’ 실험의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염의 위험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광우병에 관한 이론적 해석의 문제는 정황적 증거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어도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라는 ‘예·아니요’ 식의 극명한 대답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논쟁을 종결지을 만한 진정한 ‘과학적 증거’가 등장하거나 축적되기 전까지 ‘과학적 증거’를 빌미로 함부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착각이다.


화석상의 증거나 유전자 간의 상동성은 모두 진화론을 떠받치는 증거이다. 직접적인 실험 증거 없이 어떤 이론을 확립하고자 할 때 과학자는 실용적 해석을 선호한다. 오캄의 면도날로 유명한 단순성의 원리가 적용되기도 하고 초자연적 원리보다는 자연적 원리를 선호하는 소박한 상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의 진화를 논할 때 창조론자와 부딪치게 되는 갈등의 시작이고 또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실험실에서의 조작 실험을 통한 직접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이론은 모두 이와 같은 운명을 지닌다.


직접 증거가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실용적으로 그 증거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이론은 그다지 절대적이지 못하다. 광우병의 경우처럼 인간으로의 전염성을 증명하는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를 세심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도 단칼에 이것이 과학적 증거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는 것이다.


광우병의 위험은 광우병을 유발하는 프리온이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전파된다는 데 있다. 적어도 다양한 종의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생쥐를 이용한 실험실 내에서의 실험은 이미 종간 장벽이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생쥐는 인간 프리온 단백질의 주입에 의해 인간과 유사한 병에 걸리고,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주사한 침팬지에게서는 인간과 똑같은 병증이 유발되는 것은 자명하다. 입으로 섭취하는 것이 전염도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고농도의 섭취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광우병의 또 다른 특징은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발생한 쿠루(kuru)는 50년이 지난 뒤에 발병되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오랫동안 먹은 영국에서의 사례를 오랜 기간 관찰해보지 않는 이상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직 없다. 분명한 것은 광우병의 원인 물질이 한때는 ‘슬로 바이러스(slow virus)’라고 불렸을 정도로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실용적 해답은 ‘위험할 수 있다’가 되어야지 ‘위험하지 않다’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프리온이 고농도로 집중된 부위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것이 광우병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려야 하는 실용적 해석은 어느 부위를 먹든지 연령이 오래된 소와 동물성 사료로 키워진 소는 ‘위험할 수 있다’가 되어야지 ‘위험하지 않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쇠고기 협상단의 ‘과학적 무식’


전자(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후자(위험하지 않다)는 ‘단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후자의 말을 가능태로 바꾸면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가 되는데, 이는 어떤 경우이든 무책임한 발언이다. 현재 과학적 증거를 내세우며 수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위험하지 않다’라는 단정이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는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는 집단이다. 과학에서 단정은 몇 가지 경우에만 한정된다. 그러한 것을 ‘법칙’이라 부른다. 만약 광우병 사태에 대해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 증거라 불리는 것을 이용한 해석이라면, 우리는 현재 ‘가능태’로 표현할 수 있는 말 외에는 가진 게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적 증거’라는 말을 오용하는 장관의 태도는 무책임하다. 현재의 과학적 증거는 수입을 허용할 만큼 ‘단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인간 전염성 문제는 열려 있으며, 과학계의 논쟁 중 하나이며, 따라서 잘 확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자의 태도이다. 따라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고자 할 때 과학적 증거를 사용하는 이들의 태도는 잠정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 ‘과학적 증거’를 마치 이미 결판이 난 결투처럼 생각하고 협상에 임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무지의 소치이며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오용이고 모욕이다. 과학적 증거를 실용적으로 해석하고자 할 때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과학적 증거’를 운운하는 이들이 신경 썼어야 하는 것은 국익과 국민 건강의 문제일 뿐 ‘과학적 증거’로 무엇인가를 결론짓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적 증거’라는 말로 과학을 종교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학적’이라는 말이면 무엇이나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과학적 증거는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여유를 제공할 뿐, 무엇을 결정하게 하는 만능 상자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에 무슨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며, 친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과학’이 아니라 ‘상식’이다.


위에서 논했듯 정부 담당자들이 이야기하는 ‘과학적 증거’는 우리에게 그 어떤 ‘과학적’ 결론도 내려주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그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닌 국익의 문제로 환원된다. 성난 시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국익과 건강권의 문제다. 광우병 괴담이 퍼지는 것을 토대로 또다시 ‘과학적 증거’를 논하는 것은 오류다. 애초에 ‘과학적 증거’란 그런 사태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돗물을 통해 광우병이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공기를 통해 전파될 가능성보다는 크다.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의 과학적 무지를 질타하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얼마나 과학적인지 되묻고 싶다. 과학자인 나는 괴담의 허무맹랑함에 가벼운 미소를 날릴지언정 이를 토대로 과학적 무지를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증거’를 운운하는 협상 담당자의 과학적 무지가 국익으로서는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했듯이 민중은 사태를 정확히 본다. 이토록 현명한 민중을 지녔기에 이 땅에 민주화가 가능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과학을 잣대로 사태를 오용하는 세력을 과학자인 나는 용서하기 힘들다. 굳이 내게 결정하라면, 나는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는 비과학적 행위보다 ‘과학적 증거’를 오용한 협상 당사자들의 비과학적 태도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증거’를 오용한 자 용서 못해


소 곱창구이를 좋아하는 나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도 소 곱창구이를 먹을 것이다. 하지만 광우병에 걸렸을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해도 좋은가를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다. 이것은 광우병이라는 질병의 실체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벌일 수 있는 한 과학자의 객기와, 국익이 걸린 문제를 다룰 때 생기는 신중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능성은 열려 있고 과학적 증거를 해석하는 문제도 열려 있다. 누구도 그것을 단정지을 수 없다. 그것은 국익과 국민의 건강과 또한 상식의 문제다.


과학적 증거란 양날의 칼이다. 절대적 객관성이라는 과학의 이미지가 이제 좀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주관적이며 과학적 증거란 없다는 무지한 발언을 이제는 좀 거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과학도 상식에서 출발하며, 과학자도 사람이며, 따라서 과학도 불완전함을,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신뢰를 제공하는 학문임을 이제는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과학자는 슬프다.


※ 광우병에 관한 증거들은 가장 최근 리뷰된 과학 논문을 참고로 했다.

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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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oisontongue.sisain.co.kr/100


인터넷미디어협회(인미협)은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단체다. ‘포털 규제’ 등과 관련해 인미협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 인미협의 활동과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짚어보기로 하고, 인미협이 최근 MBC <PD수첩>에 출연하는 손정은 아나운서에 대해 냈던 성명서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어 좀 짚어보려고 한다.


지난 7월9일, 인미협은 손정은 아나운서가 ‘<PD수첩 탄압 중단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촛불문화제(7월8일)’에 참가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냈다. ‘MBC가 여성 앵커를 정치 투쟁의 도구로 악용했다’라는 것이 성명의 내용이었다. 


손 아나운서에 대한 인미협 비난의 요지는 이렇다. 하나, 뉴스 앵커는 엄정한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하는데 첨예한 갈등을 야기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둘, 앵커로서 공익적 가치를 위한 집회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사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다. 인미협은  최재혁 MBC 아나운서 부장이 이런 자신들의 충고를 듣고도 손 아나운서를 징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날 집회에서 손정은 아나운서는 촛불과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손 아나운서가 침묵시위를 한 것은 말주변이 없어서, 생각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침묵은 울림이 컸다. 그녀는 침묵으로 어떤 달변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이후에 이런 성명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손 아나운서가 ‘침묵시위’를 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말을 가지고 어떤 생트집을 잡았을지...


중앙일보(7월11일자)는 “MBC, 여성 앵커를 정치적으로 악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성명 내용을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의 위에는 ‘PD수첩 광우병프로 사내 심의서도 “사실관계 확인 유의” 등 지적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밑에는 “KBS 특별감사 다룬 뉴스9 자사 입장만 옹호...공공성 잃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옆에는 “당신 회사 약 하자 있다고 소문내겠다”라는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검찰 수사 관련 기사가 실렸다.
 

압권은 삼성 이건희 전 회장 기사다. 이런 기사들에 눌려 오른쪽 구속에 이 전 회장이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이 전 회장에 대해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원을 구형했다는 것을 아주 ‘간결하게’ 전했다. 그나마 제목은 ‘이건희 전 회장 “모든 책임질 것” ’이라고 달려 이 전 회장을 변호해주고 있었다.


이 기사와 이 지면의 편집에 대해 나는 “MBC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비판 기사를 여기자에게 쓰게 한 것은 중앙일보가 여기자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라고, 인미협식으로 절대로 비판하지 않겠다. 딱 한 가지, 해당 기자가 형편없는 성명서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는 것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싶다.





위 영상물은 미디어몽구(www.mongu.net)에서 퍼온 것입니다.

이 성명서는 기본이 안 된 성명서다.
이 성명서의 전제는 두 가지를 부정하고 있다.
'손정은 아나운서에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리고 ‘손정은 아나운서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인미협 성명서는 최재혁 부장이 “그날 촛불문화제는 전국 MBC 노조원총회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행사였기 때문에 손 앵커가 노조의 일원으로서 참여했던 것. 앵커의 중립성 여부와 관련해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라고 답한 것을 빌미로 손 아나운서의 집회 참여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MBC노조의 강권이었다고 주장한다.


손 아나운서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서 노조원 총회와 촛불 집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아예 무시한다. 이런 인미협의 인식에는 ‘여자 아나운서는 생각이 없다’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인미협은 강권에 의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MBC는 경영진과 노조가 유착하여, 젊은 여성 아나운서조차 정치투쟁의 도구로 악용하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라고 주장한다.


인미협의 말은 손 아나운서의 집회 참여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MBC 경영진과 노조의 협잡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미협 말을 정리해서 이해하면 노조 집회에 경영진이 나가라고 압박해서 손 아나운서가 나왔다는 것이다. 집회 참여가 보수언론의 ‘먹이’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노조와 경영진의 강권에 의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고기 티본스테이크’같은 소리인가? 이런 식이면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들의 강권에 의해 참석했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집회에 나온 소울드레서 회원들은 카페 운영자의 강권에 의해서 참석한 것인가? 정말 지독한 억지다. 보통 억지가 아니라  ‘단군 이래 최악의 억지’다.


‘손정은 아나운서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더 문제다. 인미협은 언론사 연합단체다. 그렇다면 헌법이 규정하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가장 충실해야 할 단체다. 그런데 이를 부정한다. 이는 언론단체가 낸 성명 내용으로서는 기본이 안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사를 어제(7월14일) KBS 라디오 휴게실에서 우연히 보았다. 어떻게 이런 기사가, 이런 성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쉬는데 앞자리에 김윤지 아나운서가 앉았다. 조금 망설이다 통성명을 하고 물었다. <시사투나잇> 앵커를 했었던 김 아나운서가 누구보다도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 기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MBC가 손정은 아나운서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김 아나운서는 단호하게 “그런건 아니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을 삼켰다. 나도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질문을 삼켰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럽다. 논쟁이 되지도 않는 것을 괜히 다시 끄집어내서 논쟁을 확산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 때문이다. 사실 인미협이 손 아나운서의 집회 참여를 비난하는 것은 떡밥이다. 진짜 공격하고 싶은 것은 손 아나운서의 2006년 행적이다. 이것을 계속 환기시키고 싶어서 집회 참가를 빌미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다음은 인미협의 성명서 전문이다.


MBC의 최재혁 제작아나운서 부장은 본 협회가 공영방송 9시뉴스 앵커의 신분으로 정치적 촛불집회에 참여한 손정은씨에 대해 징계를 하라는 요구를 일축했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그날 촛불문화제는 전국 MBC 노조원총회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행사였기 때문에 손 앵커가 노조의 일원으로서 참여했던 것. 앵커의 중립성 여부와 관련해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최재혁 부장은 자기 스스로 손정은 앵커의 집회 참여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MBC노조의 강권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말았다. 그러나 본 협회가 징계를 내리라 요청한 측은 제작아나운서부가 아니라 MBC뉴스데스크를 운영하는 보도본부였다. MBC노조가 강권으로 데려갔든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보도본부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이 운영하는 뉴스앵커가 정치적 집회에 참여했으면 징계를 내리는 것이 마땅한다. 그러나 MBC보도본부조차도 어떠한 징계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현재 MBC는 경영진과 노조가 유착하여, 젊은 여성 아나운서조차 정치투쟁의 도구로 악용하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손정은 앵커는 지난 2006년 3월 26일 부산에서 자신이 다니던 교회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큰 물의를 빚은바 있다.


“0000 교회의 성도이자 MBC 방송국 아나운서 손정은입니다.


저의 첫번째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영접을 해냈읍니다. 그것도 부산 시장 허남식 시장님을 영접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 0000 가족이 되었읍니다.


목사님 기도 해주세요 허남식시장이 다시 부산 시장이 다시 되신다면 흑암의 세력은 많이 무너질 것입니다“


허남식 시장은 손정은 앵커의 바람대로 다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시장이 되어 정부를 전복하려는 흑암의 세력을 무너뜨리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손정은 앵커의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따른다면, 그는 허남식 시장과 함께 흑암세력 타파에 나서야 한다. 이런 손정은 앵커가 흑암세력이 준동하는 촛불집회에 나섰다는 것은 MBC 경영진과 노조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오직 정치투쟁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특정 교회 홈페이지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공개 지지글을 올린 손정은 앵커의 과거 처신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MBC의 구조 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젊은 여성 아나운서에게 그 책임을 다 물을 수 없다.


지금 손정은 앵커가 무너뜨리겠다는 흑암세력의 정체는 바로 MBC이다. MBC가 정치적 목적과 자사이기주의적 관점으로 불법시위를 선동하고, 포털 다음과 유착하여 토론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시사교양프로그램을 왜곡하는 데 이어, 약자인 여성 아나운서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본 협회는 간과하지 않겠다.


이미 본 협회는 남녀차별금지법에 의거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 측에 MBC의 뿌리깊은 여성차별적 앵커기용 악습에 대해 문의를 해놓았다. 이번주 안에 정식 의견서를 제출하여, MBC 경영진들에 징계를 요청할 것이다.


본 협회가 손정은 앵커를 대신하여, 흑암세력 MBC를 응징할 터이니, 손정은 앵커 역시, 아무리 MBC 경영진과 노조가 협박하더라도, 최소한의 언론인의 양심을 지키며, 자신의 갈 길을 가주기 바란다.

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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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광우병위험물질 발견된 쇠고기 전량 리콜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view.html?cateid=1019&newsid=20080627151712339&cp=ohmynews




미 농무부 식품안전국은 SRMs를 발견해 쇠고기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고 26일 발표했다. 사진은 해당 사실을 알리는 식품안전국 사이트 화면.

한-미간에 쇠고기 추가협상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26일(미국 현지시각) 미국에서는 특정위험물질(SRMs) 발견으로 쇠고기가 리콜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는 25일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이뤄지고, 26일 이같은 내용이 관보에 게재되는 등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유통이 가능하게 된 민감한 시점에서 발생한 일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미 농무부(USDA) 식품안전국(FSIS)은 26일(현지시각) 홈페이지에 텍사스 주 포트워스(Fort Worth)소재 벨텍스사(Beltex Corporation)의 프론티어 미츠(Frontier Meats)가 약 2850파운드(약 1300㎏)의 소머리를 전량 회수조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FSIS는 전량 회수조치를 단행한 이유로 이 소머리에서 SRMs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FSIS는 같은 날 미주리주 트림블(Trimble) 소재 파라다이스 로커 미트사(Paradise Locker Meats)가 120파운드의 소머리를 자진 회수한다고 발표했다. FSIS는 SRMs로 분류된 편도(Tonsils)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농무부 식품안전국, 벨텍스사 SRMs 관련 발표 내용 보기
미 농무부 식품안전국, 로커 미트사 SRMs 관련 발표 내용 보기
미 농무부, SRMs 발견 쇠고기 전량 회수

SRMs는 BSE, 일명 광우병을 유발시키는 감염물질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쇠고기의 일부 기관 또는 조직을 지칭하는 것으로, FSIS는 사람들이 SRMs 섭취를 통해 광우병 병원 인자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SRMs가 식품에 포함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리콜조치 해당 제품은 2007년 5월 31일부터 2008년 6월 24일 사이에 생산·포장된 것으로 이미 텍사스 주의 달라스와 포트워스 지역의 소매점과 점심식사 간이 판매대 등에 유통이 되었다고 FSIS는 밝혔다.

FSIS는 문제의 제품들이 텍사스 주 관리들의 소매점 정기 정검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이번 리콜은 클래스II(Class II) 리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FSIS는 리콜을 단행할 때 세 가지 등급을 매기는데, 클래스 I은 문제 식품의 섭취로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주거나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때, 클래스II는 문제 식품의 섭취로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적게나마 있을 때, 클래스III는 문제 식품의 섭취가 건강을 해칠 만한 가능성이 없을 때 매긴다.

이번 리콜 사태는 미국의 SRMs 부위가 소의 도축 과정에서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고, 결국 소비자들에게까지 유통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 검역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내는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제품들이 거의 한 달 전부터 진열대에서 판매되다가 최근 주 공무원의 정기 검사에서 적발된 만큼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문제의 제품을 구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30개월 미만 연령 쇠고기에 대해서는 소머리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하고 있어 이번 미국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리콜 원인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에서 발생할 경우 어떤 식으로 적발해 유통을 막을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SRMs부위 제거 못하고 소비자에게 유통... 미 검역시스템에 구멍


한편 25일에는 또 다른 쇠고기 제품에 리콜 조치가 떨어졌다. 이번 리콜은 '클래스 I'에 해당하는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이콜라이 균에 감염된 간 쇠고기 제품을 대상으로 취해졌다.

미 농무부, 이콜라이 균 감염 쇠고기 리콜 조처 발표 내용 보기
FSIS는 오하이오주 신시네티에 있는 미국 최대 식품 유통 업체인 크로거(Kroger Co)가 "5월 21일에서 6월 6일 사이에 미시건 주와 오하이오 주의 톨레도, 또 컬럼부스 지역의 크로거 소매점에서 판매된 간 쇠고기(Ground Beef)가 들어간 모든 종류의 크로거 제품들을 전량 리콜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리콜의 이유는 문제 제품들이 이콜라이 균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

리콜 대상이 되는 제품은 특정 제품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5월 21일과 6월 6일 사이에 판매된, 간 쇠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크로거 상표의 모든 제품에 적용된다. 또, 유통기한이 2008년 5월 21일까지, 그리고 2008년 6월 8일까지로 찍힌 모든 간 쇠고기 제품도 전량 리콜 조치를 받았다.

미 최대식품유통업체 크로거도 쇠고기 제품 전량 회수

FSIS는 문제의 제품들이 진열대 위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이미 문제의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아직 소비를 하지 않은 채 냉장고 등에서 보관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FSIS는 또 문제의 제품을 발견할 경우 즉각 폐기하거나 구매처로 가서 환불하라고 말했다.

문제 제품들에 대한 리콜 처분은 미시건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각각 보고된 15명, 17명 환자의 역학 조사 결과를 토대로 취해졌으며, 이 조사에 참여한 기관은 미시건 주와 오하이오 주의 농림보건부(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Health)와 질병조절예방 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라고 FSIS는 전했다.

이콜라이 0157(E. Coli 0157:H7)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치명적인 맹독성 박테리아로, 감염될 경우 피가 섞인 설사와 탈수 증세를 보이며, 증세가 심각할 경우 신장 기능이 멈추기도 한다. 어린이와 노약자,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의 경우, 이콜라이에 의한 식중독 감염 확률이 특히 높다.

이콜라이균 감염에 의한 미국 식품의 리콜은 특히 2006년 이후 매우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2007년에는 이콜라이 균에 오염돼 리콜된 '간 쇠고기 제품'만 20건이 넘고, 올해는 이미 5건의 리콜과 한 건의 경고 조치가 취해졌다.

미 농무부, 리콜 현황 발표 내용 보기
환자 발생 후에 리콜 조치 '다반사'... 한국에서는?

미국 식품의 리콜 조치는 제품이 유통되기 전에 문제가 발견돼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소매나 도매, 학교, 병원 등 급식소로 유통이 다 된 후, 환자가 여러 곳에서 수십명 발생한 뒤에야 리콜 조치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미리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채 한국으로 수입돼 한국 국민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나서야 문제 원인이 규명될 경우 문제 제품을 누가 어떤 식으로 책임있게 회수할 수 있을지, 또 이콜라이 같은 식중독 균에 오염된 식품이 한국으로 수출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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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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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4년 중금속 오염실태 조사 특종으로 한국기자상(7회) 수상

기사를 쓰기 위해 여러 대학 도서관을 순례하며 논문 자료를 정독하고,
정기적으로 갱신되는 논문 리스트를 확인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


2. 1974년 기자협회 국제신보 분회의 언론자유실천대책위 간사로 활동
언론자유실천대책위 간사로 활동

유신정권의 장기화와 언론의 반정부 투쟁(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등)에 동참해 반정부, 반박정희 노선에 참여, 언론자유 투쟁


3. 1976년 포항 유전 경제성 없다는 기사로 해고 당함.

당시는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로 인해 전국민이 국내 해저석유탐사에 큰 기대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고,
'한국도 곧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건만, 그는 기사 적성을 위해 석유 시추에 대해 공부한 결과,
이에 의문을 품어 광구 시추를 맡은 미국 쉘사(社)의 사무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의 열성을 보이며 정보를 모아,
포항 앞바다 유전이 경제성이 없는 유전이었음을 밝혀내 이를 보도함. 포항 석유 시추는 중앙정보부에서 관리하면서
박 대통령이 실망할까봐 보고를 하지 않았었고, 언론에 압력을 가해 석유관련 보도 금지를 해 놓았었던 상태였으나,
그는 철저한 자료 분석에 근거해 포항유전의 비경제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200부를 찍어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석유관련 정부부처, 각 언론사 주한 외국 특파원 앞으로 발송. 이후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기자직에서 해고를 당함.


4. 1980년 광주 5.18무단취재로 해고

중정 부장이 바뀌자, 복직을 할 수 있었고, 이후 80년에 신군부의 만행을 취재하겠다며 광주로 단독 잠입취재를 갔고,
회사에는 아프지도 않은데 병가를 제출. 이후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해 신문사에 송출. 때문에 국제신문사의
처지가 난처하게 되어 또다시 해고를 당했고, 이후 같은 해 8월 신군부는 전국 언론사에 그를 해임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며 확인사살.


5. 1982년 김근하 어린이 유괴사건의 검찰 측 고문 조작 사건 기사화

1967년 부산에서 김근하 소년이 유괴 살해 사건 발생하였는데, 검찰은 김기출씨를 범인으로 지목...
그러나, 결국 무죄로 풀려나오게 되었으나, 김기출씨는 고문 휴유증으로 곧 사망.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15년째인 1982년 "공명심에 가득 찬 검사와 경찰이 어떻게 고문을 해
사건을 조작했으며, 무전과의 무고한 청년의 인생을 망쳤는지에 대한 상세한 고찰로 기사를 작성.
그의 노력으로 이 사건은 검찰의 무리한 고문수사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으며...
그가 작성한 기사로 '신화 1900'이라는 제목의 연극 공연되었고, 이 연극이 그 해 상을 휩쓸었음.
당시 MBC 드라마 [수사반장] 작가 윤대성씨도 이 기사를 토대로 드라마용 시나리오를 썼음.


6. 각종 3공, 5공 비화 취재

10·26사태 때 피고인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를 취재해 10·26사태를 재구성,
부마항쟁의 원인과 경과를 상세히 추적한 보도를 내놓음으로써
부마항쟁과 김재규 그리고 10·26사태 간의 관계를 설명 및 탐사보도.
이후락 전 정보부장의 인터뷰.


7. 박정희와 동거한 여인 밝혀냄

3공 비화 추적과 관련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하기 전,
이화여전(이화여대 전신)을 나온 원산 출신의 이모 여인과 동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여인은 박정희와 헤어진 후 푸줏간을 하던 사람과 결혼해 살다가 작고했다.
이 여인과 박정희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육 여사와 결혼하기
전 고향(경북 선산)에서 부모가 맺어준 여인과 결혼해 딸을 낳고 이혼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또 다른 여인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8. 한국내 CIA 조직 심층취재로 안기부에 끌려감

1986년 그는 월간조선 2월호에 '한국 내 미 CIA의 내막'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리서치 유닛(Research Unit)이라는 이름의 미 CIA 한국거점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떤 활동을 하며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이들의 사무실 전화번호까지 밝혀버린 것.
주한 미대사관이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정보는 CIA와 늘 접촉하는 안기부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것이다.
화가 난 워커 주한 미대사가 장세동(張世東) 당시 안기부장에게 항의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남산에 있던 안기부 대공수사국 대공수사단의 지하 조사실로 들어가 취재 경위를 조사받았다. 


9. 이수근 간첩 조작사건 취재

1989년 3월호에 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제하의 기사.
이수근은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을 하던 1967년 3월22일 판문점에서 귀순했다.
그가 남쪽으로 넘어올 때 판문점에 있던 북한군은 그의 월남을 막기 위해 총격을 가했다.
귀순용사 이수근은 한국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여교수와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나갔다 체포된 후 위장간첩으로 몰려 1969년 7월2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이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수근은 위장간첩이 아니었다.
그는 남쪽에서도 자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홍콩과 베트남을 거쳐 제3국으로 나가려고 했다가 검거된 것이다. 그는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준 대로 연설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러한 그가 검거되자 김형욱 중정부장은 조잡한 암호문 등을 만들어 그를 위장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그의 이름은 조갑제입니다




사람이 변하는건 순식간...


출처: http://typoon0726.tistory.com/1154
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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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다가 공감되는 글이 있어서 퍼왔다..

원문 보기: 고병권의 '촛불정국' 분석 - "추방된 자들의 귀환"

추방된 자들의 귀환 - 2008년의 촛불시위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1. 어두운 전조

"처음엔 몇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온통 까맣게 되었다."(카네티, 『대중과 권력』)
대중이란 그런 것이다. 2008년 4월만 하더라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5-6월에 그토록 까맣게 되리라고. 모두가 이 사태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한편으로 그것이 예정되어 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100일에 그런 일이 예정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사태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벤야민의 표현처럼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조그만 문”이기 때문이다(벤야민, 「역사철학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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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강부자' 청와대 수석들>

결국 문제는 전조이다. 언제 번개가 칠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모두가 산등성이에 먹구름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떠도는 먹구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조금씩 방전이 일어나고 있는 먹구름들, ‘번개를 낳을 구름들’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쌓이고 또 쌓였다. ‘고소영’, ‘강부자’, ‘S라인’ 등으로 희화화된 초대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야기한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소위 0교시 문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각종 규제 완화, 법질서에 대한 강조. 공기업 민영화(전기, 가스, 수도, 의료보험 등), 국토 전체를 가르는 대운하, 그리고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협상 처리.

어두운 전조. 신정부의 새로운 조치들은 대중의 ‘불안’을 ‘더 크게’ 증폭시켰다. ‘더 크게’라는 말에 유의하자. 왜냐하면 ‘불안’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이명박 정부를 낳았다. 집권자들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이명박 정부를 낳은 것은 그들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바로 대중들의 ‘불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십여 년 동안 대중들은 극도의 삶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안은 삶의 안정된 구조가 해체된 사태, 아예 하나의 ‘구조’로 자리잡은 영속적 ‘재구조화(리스트럭처링, restructuring)’, 일상이 된 예외적 시간 등이 낳은 정서였다. 그것은 또한 공동체 ‘내부’에 있지만 ‘보호’받을 수 없을 때 생겨나는 감정, 우리 사회 안에 있지만 지구적 시장의 폭력이 곧바로 타격을 가한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울타리가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정부가 있는 것인지, 저 정부가 과연 우리의 정부인지 의심스러운 사태. 대중들은 거기서 어떤 ‘상실감’을 느낀다.

대중들이 느낀 상실감.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소득의 상실, 고용의 상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삶의 안전보장 상실’이 있다. 현 집권자들은 지난 십년을 ‘잃어버린 십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 보여주듯 상실의 의미는 그들과 대중들에게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집권자들이 지난 십년 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재집권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어떤가. 그들은 여전히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어떤 힘에 삶이 내맡겨져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대중들은 자기 삶을 좌우하는 모든 결정들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으며 그것이 도무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이 불안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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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안단테'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탄핵 청원>

이 먹구름들이 얼마나 농밀해졌던가.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전체가 요동칠 수 있다는 조짐들. 사실 아주 강력한 신호가 4월 6일에 포착되었다. ‘안단테’라는 아이디를 쓴 한 고등학생이 한 인터넷 사이트가 마련한 ‘국민청원’란에 ‘대통령’ 탄핵 청원을 올렸다. 사실 온갖 ‘안티’ 카페들이 만들어지고 온갖 청원들이 난무하는 세태를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장난’이었을지 모른다. 서명 목표를 천만 명으로 잡은 것도 그 탄핵청원의 어떤 비현실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탄핵 청원에 동의한 인터넷 서명자는 가볍게 백만 명을 넘어버렸다. 서명자 수가 매일 십만 명 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느꼈다. 집권자들을 제외하고는.

먹구름이 가득하다면 아주 사소한 사건도 방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방전은 무시무시한 번개로 발전한다. 그 작은 방전을 일으킨 것이 ‘쇠고기 협상 타결’이었다. 그 타결 소식을 듣고 부시를 만나러 가던 이명박은 환호성을 질렀다는 어떤 전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방전을 일으켰다. 이런 전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쇠고기 협상’에 대해 “이전 정부가 벌여놓은 일을 설거지 했을 뿐”이라는 말이나,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어 알려졌다”는 정부의 말이 이 정도의 반발을 불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지난 정부에서도 ‘쇠고기 협상’은 ‘스크린쿼터 축소’ ‘의약가 조정’ 문제’, ‘자동차배기가스 규제 기준’ 문제 등과 함께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을 위한 소위 ‘4대 선결과제’ 중 하나이긴 했다. 현 정부의 말마따나 광우병 위험도 다소간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어디에 있었는가. 집권 세력은 그들 자신이 모아놓은 먹구름, 그 어두운 전조의 형성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수 없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4월 30일 문화방송의 <피디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문제를 거론했을 때의 파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방송 프로그램의 농간에 놀아난 무지한 대중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소위 진보 진영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정태인은 경향신문이 주최한 시국토론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낀 놀라움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 나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500회 정도 기고·강연을 하면서 그때마다 광우병 얘기를 했는데도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았는데 단숨에 여중생에 의해 돌파된 게 놀라웠다. ... 그 다음 발전 과정은 더 놀라운데, 대운하, 민영화, KBS 지키기까지 의제가 확장됐다.”(경향신문, 2008/6/18)

정말 왜 그랬을까. 광우병 위험을 그가 그토록 떠들 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는데, 지금 이 사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사실 이 사태는 우리에게 낯선 게 아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가 일으킨 사고로 ‘미선’, ‘효순’ 두 중학생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건은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미국을 규탄하던 시위대는 응원 군중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월드컵이 그 사건을 삼켜버렸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그 사건은 다시 조명을 받았고 대규모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대책위 관계자가 정태인과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그토록 싸울 때는 돌아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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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2008년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오른쪽 2002년 미선, 효순 추모 촛불집회>

대중이란, 메시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것을 만나지 못한다. 그것은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것은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초 매초가 그것에 열려있다.  


2. 광장으로 난입한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한마디로 그들은 누구인가. 처음에는 몇몇이었다가 갑자기 새까맣게 몰려든 이들. 그들 낱낱을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알 수 없다. 그들은 한편으로 학생이고, 주부이고, 노동자이며, 실직자고, 노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이름과 직업을 밝힐 때조차 익명의 대중으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가능한 물음일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것은 대중이라는 흐름에서 특이점에 대한 물음일 때 의미를 갖는다. 특이점과 보통점을 구별하는 것. 이것이 관건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 중 다수는 누구였는가?’라는 물음은 그다지 좋은 물음이 아니다. 단순히 수가 많다는 것 때문에 대중이 그 집합의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이번 시위에서 문제가 되었던 집단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탄핵 발의를 했던 ‘안단테’, 그리고 초기 시위를 특징지었던 (여)중고생들, 그리고 일명 ‘유모차 부대’의 주부들. 형식적 의미에서든, 실질적 의미에서든 이들은 기존의 정치적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다.(하승우는 경향신문 시국토론에서 “여성과 청소년이 주체로 나서 ‘시민-되기’를 체험했다”고 지적했는데 의미있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들이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치적 결정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이들이지만, 또한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나 유모차부대, 그들은 광우병 쇠고기 위험에 노출되어 있거나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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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

이것은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작년 가을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는 노사정위원회의 파행 사건의 본질이 그것이었다. 회의장에 난입해서 회의를 파행시켰던 기륭전자, 코스콤, 이랜드 노동자들의 외침은 하나였다. 왜 비정규직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정작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참여하지 못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의장에 난입했던 사건, 그것은 결정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한 자들’의 ‘권리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소수자’ 일반의 것이기도 하다. 소수성은 장 자체의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 즉 소수적 투쟁은 장 안에서 일어나는 투쟁이 아니라, 그들을 주변화하거나 배제하는 장 자체에 대해서 벌이는 투쟁이다. 그것은 그 장을 규정하는 척도의 배제적 성격과 관련이 된다. 그래서 소수자들의 정치적 투쟁은 척도나 논리 자체의 정치성을 문제 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근거나 대의조직을 갖추지 못한 채, 근거나 대의기구 자체를 문제 삼을 때, 이들은 투쟁은 근거가 없고 기구들의 매개를 거치지 않는 직접행동, 즉 난입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매개 없는 대규모 진입’의 형태를 띤다. 이와 관련해서 하승창은 <한겨레>의 좌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민단체가 매개되지 않은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사실상 기존의 시민단체의 역할과 지위가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한겨레, 2008/6/12)

문제는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양극화’가 의미하는 바가 ‘대중의 소수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데모크라시는 최근 들어 부쩍 ‘데모스를 추방하는 데모크라시’ 형태를 띠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 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지만, 대중들은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사안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정부의 테크노크라트와 의회의 의원들, 주류 언론들, 그들이 어떤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배제의 정치를 작동시킨다. 즉 ‘합의로부터의 배제’, ‘합의를 통한 배제’가 작동하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다수 대중들은 추방된 자, 배제된 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범위의 차이가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수의 대중들은 그런 점에서 소수성을 품고 있었다. 가장 강렬한 반응을 보인 소수자들의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많은 이들이 품고 있던 소수성이 들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대중들의 매개 없는 난입! 그것이 이 사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3. 미디어: ‘im-media-tion’과 ‘onoff-line’

 
‘매개가 없다’, ‘매개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강력하게 부각된 것은 ‘미디어’ 영역이었다. ‘미디어’는 단순한 ‘미디에이션’, 즉 ‘매개작용’을 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임시로 하나의 조어를 하자면 미디어는 ‘미디에이션’에서 ‘이미디에이션(im-mediation)’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매개에서 어떤 직접 행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 드러난 몇몇 행동 속에서 미디어는 ‘미디어 액션’이었고, 그런 점에서 ‘행동-미디어(action-media)’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민경배는 이번 시위에서 디지털 매체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시위 참가자 유형을 참가자, 기록자, 분석자, 전파자 등으로 나누었는데, 그 분류를 따라가면서 이번 시위에서 미디어의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민경배, “X마스 트리처럼 점멸하는 민주주의”, 시사인, 2008/6/14).

1) 참가자. 거리에서 행진을 직접 벌이는 자. 그러나 그는 단순히 걷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다른 참가자와 소통하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지 않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참가를 독려한다. (이 점에서 그가 전송하는 문자메시지나 영상메시지는 상황의 전달이 아니라 촉발이라고 할 수 있다.)

2) 기록자. 시위의 주변부에 포진해서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을 활용해서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 시위의 생중계. 경찰의 채증에 대한 역채증(여기서 어떤 시선이 역전이 일어난다. 특히 경찰이 세종로에 설치한 CCTV 영상은 시위 상황을 생중계하는 중요한 화면이기도 했다). 특히 시위를 생중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뉴스 화면 등을 통해 나중에 녹화 영상을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시위의 생중계는 시위를 특정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네트워크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생중계를 보던 이들이 다시 시위 현장으로 뛰어드는 일이, 이 생중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 외 3) 분석자. 기록자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을 판독해서 경찰 폭력을 고발하고, 집회에 참가할 때 필요한 준비물이나 숙지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서 올리는 사람들이다. 또 위성사진 등을 통해 시위대에게, 시위대와 경찰의 이동경로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4) 전파자. 블로그와 게시판을 통해 집회 참가 후기도 올리고 정부와 경찰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거나 퍼 나르는 사람들. 온라인 상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소위 ‘빅마우스’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네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가 기록자가 되고, 다시 집에 와서는 분석자나 전파자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미디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사건은 ‘켜짐’과 ‘꺼짐’, ‘사이버 스페이스’와 ‘리얼 스페이스’의 연결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불가능한 조어, ‘onoff-line’라는 말로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월 10일, 우리에게 화제가 되었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집회의 사회를 본 이가 온라인 상의 대중들에게, ‘청와대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라’는 하나의 지침을 전달했다. 이것은 시위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온 라인’ 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1-2분 사이에 청와대 홈페이지는 다운되었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일어난 그 사실은 곧바로 리얼 스페이스로 전달되었다. 종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는 바이러스처럼, 서로 소통 불가능한 이질적 장을 뛰어넘은 ‘미디어’. 나는 미디어의 그런 작용이 또한 ‘이미디에이션(im-media-tion)’의 특징이라 부르고자 한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던져진, 그리고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마디이다. 그것은 일종의 ‘중간’이다. 그러나 두 개체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 미디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는 차라리 하나의 리좀처럼 자라나는 줄기 토막이다. 그것은 하나의 장 안에서, 지배적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표상하거나 매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장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그 장들을 소통시킨다. 소통하는 것과 소통되는 것의 구별이 사라진 것. 말하는 자와 전달하는 자의 구별이 사라진 것.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의 구별이 사라진 것. 그것이 ‘이미디에이션’의 특징이다.


4. 혁명의 혁명 -바리케이트는 누가 쳤는가


매개의 실종은 대표의 실종과 통한다. 저녁에 시작된 시위가 이른 아침에야 끝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경찰이 느끼는 어떤 난감함과도 관련이 있다. 시위대에는 협상을 해 줄만한 소위 ‘대표자’들이 없다. ‘광우병 국민 대책위원회’라는 것이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들이 어떤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초기에 있었던 소위 ‘다함께 논쟁’은 운동 조직의 ‘의식적 지도’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 혹은 어떤 통제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순간적인 지도자나 전위는 있었다. 사소하게는 대중들의 행진 중에서 몇몇 사람들이 그럴듯한 의견을 표할 때 그 대중의 흐름은 그들의 의견에 맞추어 경로를 택했다. 6월 초 어느 날 저녁, 내 기억에 따르면, 앞에서 대중들의 행진을 이끌던 이들이 종로와 세종로의 교차지점에 설치한 경찰의 벽에 막히자, 종로에 앉아 집회를 진행하려고 했을 때, 뒤쪽 대중들은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로구청 뒷길을 통해 청와대쪽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상당히 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랐다. 그리고 경복궁 근처에서 경찰 벽과 부딪히자 일부는 대학로로 진출하려고 했다. 최근 경찰청장이 어떤 자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경찰이 이런 시위 전개 때문에 얼마나 곤혹스러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cf. 꼭 시위행진에만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탄핵발의를 했던 고등학생, 최초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아고라에서 중요한 의견을 내고 있는 이들, 모두가 대중들에게 하나의 출구를 제시하는 ‘일시적’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생각에, 바리케이트의 존재가 이번 시위처럼 무시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을 벌인 것은 경찰과 청와대였다(소위 명박산성). 누가 바리케이트를 쳤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누가 공격적이고 누가 수세적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리케이트가 프랑스 혁명 이후,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봉기와 혁명의 기본 모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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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응로作 『군상』
"그것은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것은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초 매초가 그것에 열려있다."

언젠가 엥겔스는 ‘과거 혁명이 새로운 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위 혁명을 혁명하는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고병권,
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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