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중간결산 ①] '이명박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예고편
[프레시안 윤태곤/기자]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노무현 정부' 각 부처 업무보고가 8일로 일단락됐다.
다음 달 25일 새 정부 출범까지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인 앞에는 정부 조직 개편안 확정, 청와대-총리실 개편안 마련, 공약사항 정리 등의 현안이 산적해 있으나 업무보고 과정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방향은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또한 이 당선인의 선거 승리 이후 지금까지 행보를 되짚어 보면 '이명박 정부'의 스타일을 내다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향후 5년이 '이명박 만기친람'(萬機親覽; 모든 국정을 친히 살핌)으로 전개될 것을 암시한 예고편인 셈이다.
인수위 구성부터 권력집중화 예고
이경숙 위원장을 필두로 인수위 라인업이 구축되던 지난 달 말부터 '미래의 청와대'로 수렴되는 권력 집중 현상은 예고됐었다.
당의 의견을 받아들여 각 분과 별로 현역 의원이 1명 이상씩 배치됐지만 전문가 출신 혹은 이 당선인의 직계로 분류될 수 있는 인사들이 다수였고 당이나 부처와 윤활유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인수위원, 전문위원 인선과정에서 '실세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당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해석하진 않았다.
인수위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이같은 현상은 한층 더 심화됐다. 정책적 사안의 경우 인수위의 독주는 눈에 띄었고 당내에선 당선인의 친위 그룹들이 '공천 시기 연기론', '공천에 대통령 의사 반영', '물갈이론'을 거침없이 내놓았다.
대운하 사업의 경우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재오 의원이 곧바로 "그건 인수위원장의 사견일 뿐"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외견상 인수위에 대한 당의 견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누가 진짜 '실세'인지를 보여준 적나라한 풍경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첫 총리, 비서실장, 각료 인선 과정에 당의 의견이 조직적으로 수렴되는 낌새는 거의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강화의 정치학
인수위에서 흘러 나오는 정부조직개편안의 핵심도 청와대 권력 강화다. 실질적 2인자로 권한을 행사했던 총리실의 위상도 격하되고 재경, 교육, 과기 부총리도 모두 없어진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내각 직할 체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우리 헌법 정신상 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장관 제청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까지 부여하고 있다. "헌법에서 총리권한만 떼놓고 보면 내각제적 요소로 해석될 만큼 강하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일반적 해석이다.
정책실, 안보실, 국정상황실 등 이른바 3실 폐지를 골자로 하는 청와대 비서실 개편안도 언뜻 보기엔 슬림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속내는 거꾸로다.
3실 폐지 대신 비서실에는 대통령 직속 프로젝트위원회가 설치된다. 한반도대운하, 외자 유치 등 관심사항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로 권한이 집중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폐지했던 경제수석, 정무수석실도 부활이 확실시 된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권한이 약화된 민정수석실의 강화, 정무수석실의 부활은 대통령비서실의 권한 확대라기보다 대통령 개인의 눈과 귀 강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국정원, 검찰, 경찰과 연결고리인 민정수석실 강화 방안은 주목할 만하다. 민정수석으로 검찰 고위간부 출신이 임명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선거 기간 BBK문제로 곤욕을 치른 당선인 측은 특히 검찰의 파워를 실감했음직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청와대로부터 권력기관 해방'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은 '회장님', 청와대 비서실은 '구조본'?
인수위 발 권력구조개편안을 들여다보면 구조조정본부, 기획조정실 등 직속 참모조직을 통해 계열사를 수직적으로 틀어쥐는 한국 재벌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한 재벌 계열사의 임원은 "인수위 뉴스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당선인이 기업 회장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기업 조직과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임원은 "하지만 아직 미흡하긴 해도 기업들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도 제왕적 기업경영 스타일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마당에 '제왕적 대통령' 식의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다.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권한의 집중은 효율성과 무관치 않은 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슈퍼 청와대', '제왕적 대통령'의 부활은 분명히 퇴행적 현상이다.
일각에선 가까운 시일 내에 매달 수출액과 고속도로 건설 진척상황을 검사하던 '현대판 박정희'를 목격할지 모른다는 자조 섞인 우려도 나온다. 시스템보다 '인간 이명박'의 판단에 의존해 모든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통치방식은 전근대성을 넘어 도착에 가깝다는 얘기다.
윤태곤/기자 (peyo@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