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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2.20 축구 이야기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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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센테 로드리게스 기옌

(Vicente Roderiguez Guillen)

생년월일: 1981년 7월 16일

출생지: 스페인 발렌시아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176cm, 74kg
포지션: 왼쪽 날개

현클럽: 발렌시아(2000~)
이전클럽: 레반테(1997~2000)
주요경력:

00/01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01/02, 03/0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우승,

03/04 시즌 UEFA컵 우승,

03/04 시즌 UEFA 수퍼컵 우승,

03/0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올해의 영플레이어스.

빠른 왼발과 골 결정력을 겸비한 미드필더인 비센테 로드리게스는 왼쪽에서 올리는 위협적인 크로스로 상대를 끊임 없이 괴롭히는 선수이다.

국가 대표팀
1981에 태어난 비센테는 1998년 16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른 스페인 팀의 일원이었으며 21세가 되기 전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발탁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2001년 9월 월드컵 유럽지역예선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으며, 이 경기에서 스페인이 4-0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비센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월드컵 대표팀에 제외되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비센테는 스페인의 유로 2004 예선 6조의 8경기에 모두 출장했고, 스페인은 그리스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했다. 비센테는 노르웨이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정확한 오른발 슛으로 1골을 터뜨렸고, 스페인이 합계 5-1로 노르웨이를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 비센테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본선에서 스페인의 3경기에 모두 출장했다.

클럽
비센테는 발렌시아 인근에 위치한 2부 리그의 레반테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며 1997/98 시즌에 프로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2000: 비센테는 2000년 여름 발렌시아로 이적해 첫 시즌 동안 33경기에 출장해 5골을 기록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에도 13경기에 출장했으나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발렌시아 출신인 비센테는 2001/02 시즌에 주전 선수 자리를 확보하면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발렌시아가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인테르에 패해 탈락할 때까지 유럽 무대 경험을 쌓기도 했다.

2003/04: 비센테는 발렌시아가 UEFA컵과 프리메라리가 준우승을 차지하기까지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면서 메스타야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는 UEFA컵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린 후 미스타의 결승골을 정확한 크로스로 어시스트해 우승의 주역이 됐다.

알고 계셨나요?
레반테의 베드로 비야로엘 회장은 비센테가 십대였을 때 그를 붙잡아 두기 위해 1억5천만 유로의 매입 조항을 계약서에 추가한 적이 있다.
1981년 7월 16일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비센테는, 비슷한 또래 선수들인 사비(21, 바르셀로나)나 이케르 카시야스(20, 레알 마드리드), 파블로 쿠냐고(22, 입스위치 타운) 등이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를 통해 스타급 선수로 발돋움 한 것에 비하면 거의 무명선수나 다름없지만, 지금은 그들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스페인 최고의 유망주이다.

중학교 시절 레반테(발렌시아를 연고로 하는 클럽으로 현재 세군다 리가에 소속) 유스팀에 입단한 비센테는, 97년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 성인팀으로 승격된다. 이는 곧 클럽에서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보답하듯 비센테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성인팀 진입 2년 만인 99-00시즌 주전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17세 이하)에 발탁되는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레방테의 감독이었던 호세 바라게르는 "비센테는 머지않아 스페인에 큰 보물로 성장할 것이다. 그의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서서히 주목을 받아가던 비센테가 결정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가나를 2-1로 물리치고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99 메리디언 컵(Meridian Cup)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대회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99-00시즌 발렌시아 지휘봉을 잡았던 명장 엑토르 쿠페르(現인터 밀란)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결국 비센테는 쿠페르의 열렬한 구애 공세를 받아들여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팀에 합류하기로 결심한다.(메리디안 컵 : 유럽축구연맹(UEFA)과 아프리카 축구연맹(CAF)이 유로96 기간 중 기획한 대회로 두 대륙의 원만한 교류가 주목적이다. 주인공들은 만 17세 이하의 전도 유망한 선수들로, 유럽과 아프리카 각각 4팀씩 참가한다. 또한 2년마다 양 대륙을 오가며 개최된다. 비센테가 참가한 99년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었고, 포르투갈이 97년 초대 우승을 차지했었다. 2001년 이탈리아 대회서부터는 대회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A,B조로 나누어 풀리그를 치른 뒤 상위 두 팀이 크로스 토너먼트로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른 종전 방식과 달리, 8개팀이 한 조를 이루고 서로 다른 대륙 팀과 대전한 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방식.)

꿈에서만 그려오던 프리메라 리가(1부 리그)와 CL 무대를 밟게 된 비센테에게 00-01시즌은, 비록 팀이 CL 준우승과 진출 티켓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행운도 많이 따라준 1년이었다. 의외로 빨리 찾아온 프리메라 리가 데뷔전(2000년 9월 16일 對마요르카)에서 데뷔골까지 기록했으며, 2001년 3월 28일 세계 최강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 호세 안토니오 카마쵸에 의해 후반 28분 교체 투입, A-매치에도 첫 발을 내딛기도 했다.

약 두 달간의 방학을 마치고 지난 8월 속개된 01-02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개막전에서의 비센테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이날의 주인공은 지단이 아닌 자신이라고 시위라도 하듯,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개인기로 상대 오른쪽 수비를 뒤흔들어 팀이 1-0으로 승리하는데 절대적인 수훈갑이 되었으며, 오스트리아와의 2002 한일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도 그의 왼쪽 돌파는 유난히 빛이 났다.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 내는 순간이었다. 비센테의 이런 환상적인 플레이에 매료된 유럽 최고 명문 클럽들은 최근 그의 낮은 연봉과 바이-아웃 조항(약 3,700만$)액을 이용한 영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라이징 스타'의 값어치를 실감한 발렌시아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처우개선을 해주어야 할 형국에 처했다.

지난 9월 5일 스페인은 리히텐슈타인을 2-0으로 제압하고 내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 말은 곧 그의 화려한 돌파를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마뉴엘 파블로처럼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비센테는 다가오는 바로 그 무대를 발판으로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왼쪽 날개로의 도약이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발렌시아의 왼쪽 날개 비센테 로드리게스는 스페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03/04 시즌 발렌시아의 2관왕을 주도한 이후, 비센테는 베니테스 감독의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마초에게 외면당한 비센테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을 흘렸고,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벤투스의 단장 루치아노 모지가 '제 2의 프란시스코 헨토'가 나타났다고 소리쳤을 때만 하더라도 비센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스페인 축구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비센테의 에이전트는 이탈리아 신문들이 '제 2의 헨토'가 유벤투스 행을 원하고 있다는 소문을 끊임 없이 보도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발렌시아는 결국 비센테를 붙잡기 위해 6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

비센테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01/02 시즌 개막전에서도 승리의 선봉장 역할을 해내며 화제가 되었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이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젊은 선수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했다. 발렌시아는 무려 30년만에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그 중심에 비센테의 자리는 없었다. 바라하, 킬리, 아이마르 등이 발렌시아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비센테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스페인 대표팀의 신델레라 자리 또한 81년생의 동갑내기 호아킨에게 내줘야 했다. 당시 스페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카마초 감독은 호아킨의 재능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카마초는 호아킨을 가리켜, '윙어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선수'라 극찬했다. 반면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된 비센테에 관해서는 "데 페드로에 비해 활약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데 페드로는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스페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혔고, 비센테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갔다.

이러한 현실에 비센테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저는 더욱 성장해야만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며 매우 진취적인 태도를 보였다. 01/02 시즌 발렌시아의 우승을 이끈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가 슬럼프에 빠져든 원인을 진단했다. 비센테는 자신의 스피드와 개인기에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주위의 동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또한 오른발이 매우 부정확했으며, 크로스의 날카로움 또한 결여되어 있었다. 2002년 여름을 통해 비센테는 왼발 킥을 집중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참고가 되었던 인물은 바로 세계 최고의 키커 데이빗 베컴이었다. 비센테는 베컴으로부터 자극을 받았고, 킥 연습에 몰두하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킬리 곤살레스 또한 훌륭한 스승이었다. 비센테는 유로 2004에서 맹활약한 이후, 킬리가 자신에게 있어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아이마르, 알벨다, 바라하 등도 비센테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수비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마르의 재능은 비센테로 하여금 커다란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비센테는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로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노력형의 선수였다.

발렌시아 구단 또한 '프렌차이즈 스타' 비센테의 성장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 대표적 인물은 회장 하이메 오르티였다. 오르티는 클럽의 재정과 비센테에게 보다 많은 경험을 주기 위해 킬리 곤살레스의 방출을 고려하기도 했다. 킬리가 바르셀로나 또는 인터 밀란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발렌시아 써포터들은 클럽의 메인 오피스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발렌시아 보드는 써포터들의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01/02 시즌 챔피언에 올랐지만, 가이스카 멘디에타, 클라우디오 로페스, 프란시스코 파리노스, 헤라르드 로페스와 같은 스타들이 팀의 재정을 위해 줄줄이 팀을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오르티 회장은, "우리 팀의 재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킬리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우리에겐 젊고 유망한 비센테가 있습니다." 라며 써포터들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그러나 발렌시아의 팬들은 구단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풋내기 비센테가 프리메라 리가 최고의 날개 중 한 명인 킬리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는 킬리의 방출을 추진했지만 과도한 이적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베니테스 감독은 여전히 비센테의 후원자였다. 킬리가 잔류했음에도 불구, 02/03 시즌 초반부터 비센테는 발렌시아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센테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고, 언론과 써포터들은 베니테스 감독의 판단에 물음표를 던졌다.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 디펜딩 챔피언 발렌시아는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 우승은 커녕 UEFA컵 진출조차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도 인터 밀란의 골키퍼 톨도의 신들린듯한 활약에 가로막혀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그러나 비센테는 킬리의 부상을 틈타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점점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즌 막바지에 발렌시아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비센테와 아우렐리우의 활약 덕분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사에스 감독 역시 비센테를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하며 두터운 신임을 나타냈고, 발렌시아의 팬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태어난 프렌차이즈 스타를 점점 자랑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03/04 시즌, 무딘 창끝처럼 날카로움이 부족했던 비센테의 왼발은 어느새 '명검'으로 변해 있었다. 발렌시아는 비센테와 함께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시즌 후반 들어 레알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가 우승권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발렌시아의 독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비센테가 데포르티보와의 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어냈을 때, 사람들은 마르고 힘없던 풋내기 선수가 어느덧 스페인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UEFA컵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펼친 비센테는 시즌 12골, 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El Pais'에서 선정하는 프리메라 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로 손꼽혔다.

스페인 언론들은 이제 라울이 아닌 비센테가 스페인 최고의 선수일 것이라 극찬했다. 그러나 비센테는 언론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로 2004 대회 동안 라울이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을 때에도 팀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라울은 우리 팀의 캡틴이며, 반드시 필요한 선수입니다. 저는 라울과 함께 뛸 때 좀 더 편안하게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측면 쪽으로 볼을 빠르게 넘겨주는 동시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능숙하게 찾아냅니다. 저는 라울이 여전히 스페인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위기의 캡틴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스페인은 유로 2004에서 실패했지만 비센테와 호아킨 양날개가 대표팀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은 크나큰 수확이었다. 호아킨이 2002년 월드컵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동안 비센테는 TV로 그 모습을 시청해야 했고, 비센테가 유로 2004의 스타로 떠오르는 동안 호아킨은 벤치와 그라운드를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스페인이 2006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81년생 동갑내기 양쪽 날개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전문가들 또한 비센테와 호아킨이 향후 10년간 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날개들임을 강조한다. 레예스, 루케, 가르시아 등은 공격수와 윙어 역할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재능임이 분명하나, 비센테만큼 측면에서의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또한 비센테와 호아킨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재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 수비라인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파괴력에 있어서는 비센테보다 호아킨 쪽이 우세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호아킨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돌파력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없을 때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비센테는 호아킨에 비해 동료들을 활용하는데 능숙하며,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2년 전,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 밀려 힘없이 쓰러지던 풋내기 비센테는 이제 빠르고, 강인하며, 날카로운 왼발을 지닌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비센테가 갖고 있는 재능의 카테고리에 실로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비수들을 돌파할 수 있는 개인기, 평범한 스트라이커 이상의 골감각,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체력, 감독의 전술을 이해하는 능력, 경기를 결정짓는 승부사적 기질까지. '노력하는 천재' 비센테의 카테고리에 앞으로 무엇이 더 추가될지 두고 볼 일이다.

국대에서

발렌시아에서

 
발렌시아

- 레반테 유스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 엑토르 쿠페르 감독의 눈에 띄어 발렌시아로 영입되었다.
- 2000년 9월 16일, 마요르카 전에서 프리메라 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 00/01 시즌 발렌시아의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 지네딘 지단은 자신의 프리메라 리가 공식 데뷔전에서 비센테를 막지 못해 레알 마드리드가 패배했다고 말했다.
- 유벤투스 단장 루치아노 모지는 비센테의 영입을 위해 바이-아웃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3400만 유로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또한 모지는 비센테에게 '제 2의 헨토(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윙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 발렌시아는 비센테를 붙잡아두기 위해 바이-아웃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금액을 6000만 유로로 상향 조정해야 했다.
- 03/04 시즌, 12골·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프리메라 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 마르세이유와의 UEFA컵 결승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 팀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 04/05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스페인 대표팀

- 2001년 3월 28일 프랑스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고 스페인은 2-1로 승리했다.
- 발렌시아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가 미래의 스페인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나 비센테는 슬럼프에 빠졌고, 카마초 감독은 그를 월드컵 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 스페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사에스 감독은 비센테를 다시금 중용하기 시작했다.
- 라울과 함께 유로 2004 지역예선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스페인 선수로 손꼽혔다.
- 유로 2004 본선 러시아 전에서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 MBC에서 선정한 유로 2004 조별예선 베스트 11에 포함되었다.


스페인 최고의 윙어가 되기까지

- 스페인 언론들은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된 비센테가 데 페드로만큼 좋은 크로스를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 드리블에 비해 킥력이 좋지 못했던 비센테는 오른발 킥 한 방으로 경기를 바꿔버릴 수 있는 데이빗 베컴을 크게 동경했다.
- 비센테는 베컴이 어린 시절부터 매일매일 셀 수 없는 숫자의 킥 연습을 반복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었던 비센테는 2002년 여름부터 킥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킬리 곤살레스는 스승 역할을 했다.
-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로 하여금 왼발 뿐 아니라 오른발 연습에도 신경쓰게 했다.
- 비센테는 02/03 시즌 데포르티보 전에서 오른쪽 날개로 출전, 팀 승리를 주도하며 맹활약했다.
- 비센테는 수비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마르의 볼 컨트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 아이마르는 비센테가 발렌시아의 03/04 시즌 2관왕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은 오른쪽 날개 호아킨이 스페인 대표팀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 유로 2004를 앞두고 오른쪽 날개 호아킨은 비센테야말로 스페인 대표팀을 바꿀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 2002년 여름, 발렌시아 써포터들은 왼쪽 날개 킬리가 팀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 2004년 여름, 발렌시아 써포터들은 왼쪽 날개 킬리가 팀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 03/04 시즌, 스페인 언론 'AS'는 비센테를 프리메라 리가에서 최고의 크로스를 날리는 윙어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 비센테는 현재 메스타야 스타디움의 인기 No.1이다.
- 2004년 여름, 이탈리아 선수들이 대거 영입되자 이탈리아어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발렌시아의 왼쪽 날개 비센테 로드리게스는 스페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03/04 시즌 발렌시아의 2관왕을 주도한 이후, 비센테는 베니테스 감독의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마초에게 외면당한 비센테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을 흘렸고,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벤투스의 단장 루치아노 모지가 '제 2의 프란시스코 헨토'가 나타났다고 소리쳤을 때만 하더라도 비센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스페인 축구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비센테의 에이전트는 이탈리아 신문들이 '제 2의 헨토'가 유벤투스 행을 원하고 있다는 소문을 끊임 없이 보도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발렌시아는 결국 비센테를 붙잡기 위해 6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

비센테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01/02 시즌 개막전에서도 승리의 선봉장 역할을 해내며 화제가 되었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이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젊은 선수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했다. 발렌시아는 무려 30년만에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그 중심에 비센테의 자리는 없었다. 바라하, 킬리, 아이마르 등이 발렌시아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비센테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스페인 대표팀의 신델레라 자리 또한 81년생의 동갑내기 호아킨에게 내줘야 했다. 당시 스페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카마초 감독은 호아킨의 재능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카마초는 호아킨을 가리켜, '윙어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선수'라 극찬했다. 반면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된 비센테에 관해서는 "데 페드로에 비해 활약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데 페드로는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스페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혔고, 비센테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갔다.

이러한 현실에 비센테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저는 더욱 성장해야만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며 매우 진취적인 태도를 보였다. 01/02 시즌 발렌시아의 우승을 이끈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비센테가 슬럼프에 빠져든 원인을 진단했다. 비센테는 자신의 스피드와 개인기에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주위의 동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또한 오른발이 매우 부정확했으며, 크로스의 날카로움 또한 결여되어 있었다. 2002년 여름을 통해 비센테는 왼발 킥을 집중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참고가 되었던 인물은 바로 세계 최고의 키커 데이빗 베컴이었다. 비센테는 베컴으로부터 자극을 받았고, 킥 연습에 몰두하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킬리 곤살레스 또한 훌륭한 스승이었다. 비센테는 유로 2004에서 맹활약한 이후, 킬리가 자신에게 있어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아이마르, 알벨다, 바라하 등도 비센테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수비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마르의 재능은 비센테로 하여금 커다란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비센테는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로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노력형의 선수였다.

발렌시아 구단 또한 '프렌차이즈 스타' 비센테의 성장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 대표적 인물은 회장 하이메 오르티였다. 오르티는 클럽의 재정과 비센테에게 보다 많은 경험을 주기 위해 킬리 곤살레스의 방출을 고려하기도 했다. 킬리가 바르셀로나 또는 인터 밀란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발렌시아 써포터들은 클럽의 메인 오피스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발렌시아 보드는 써포터들의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01/02 시즌 챔피언에 올랐지만, 가이스카 멘디에타, 클라우디오 로페스, 프란시스코 파리노스, 헤라르드 로페스와 같은 스타들이 팀의 재정을 위해 줄줄이 팀을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오르티 회장은, "우리 팀의 재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킬리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우리에겐 젊고 유망한 비센테가 있습니다." 라며 써포터들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그러나 발렌시아의 팬들은 구단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풋내기 비센테가 프리메라 리가 최고의 날개 중 한 명인 킬리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는 킬리의 방출을 추진했지만 과도한 이적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베니테스 감독은 여전히 비센테의 후원자였다. 킬리가 잔류했음에도 불구, 02/03 시즌 초반부터 비센테는 발렌시아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센테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고, 언론과 써포터들은 베니테스 감독의 판단에 물음표를 던졌다.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 디펜딩 챔피언 발렌시아는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 우승은 커녕 UEFA컵 진출조차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도 인터 밀란의 골키퍼 톨도의 신들린듯한 활약에 가로막혀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그러나 비센테는 킬리의 부상을 틈타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점점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즌 막바지에 발렌시아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비센테와 아우렐리우의 활약 덕분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사에스 감독 역시 비센테를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하며 두터운 신임을 나타냈고, 발렌시아의 팬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태어난 프렌차이즈 스타를 점점 자랑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03/04 시즌, 무딘 창끝처럼 날카로움이 부족했던 비센테의 왼발은 어느새 '명검'으로 변해 있었다. 발렌시아는 비센테와 함께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시즌 후반 들어 레알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가 우승권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발렌시아의 독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비센테가 데포르티보와의 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어냈을 때, 사람들은 마르고 힘없던 풋내기 선수가 어느덧 스페인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UEFA컵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펼친 비센테는 시즌 12골, 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El Pais'에서 선정하는 프리메라 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로 손꼽혔다.

스페인 언론들은 이제 라울이 아닌 비센테가 스페인 최고의 선수일 것이라 극찬했다. 그러나 비센테는 언론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로 2004 대회 동안 라울이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을 때에도 팀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라울은 우리 팀의 캡틴이며, 반드시 필요한 선수입니다. 저는 라울과 함께 뛸 때 좀 더 편안하게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측면 쪽으로 볼을 빠르게 넘겨주는 동시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능숙하게 찾아냅니다. 저는 라울이 여전히 스페인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위기의 캡틴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스페인은 유로 2004에서 실패했지만 비센테와 호아킨 양날개가 대표팀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은 크나큰 수확이었다. 호아킨이 2002년 월드컵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동안 비센테는 TV로 그 모습을 시청해야 했고, 비센테가 유로 2004의 스타로 떠오르는 동안 호아킨은 벤치와 그라운드를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스페인이 2006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81년생 동갑내기 양쪽 날개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전문가들 또한 비센테와 호아킨이 향후 10년간 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날개들임을 강조한다. 레예스, 루케, 가르시아 등은 공격수와 윙어 역할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재능임이 분명하나, 비센테만큼 측면에서의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또한 비센테와 호아킨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재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 수비라인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파괴력에 있어서는 비센테보다 호아킨 쪽이 우세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호아킨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돌파력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없을 때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비센테는 호아킨에 비해 동료들을 활용하는데 능숙하며,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2년 전,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 밀려 힘없이 쓰러지던 풋내기 비센테는 이제 빠르고, 강인하며, 날카로운 왼발을 지닌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비센테가 갖고 있는 재능의 카테고리에 실로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비수들을 돌파할 수 있는 개인기, 평범한 스트라이커 이상의 골감각,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체력, 감독의 전술을 이해하는 능력, 경기를 결정짓는 승부사적 기질까지. '노력하는 천재' 비센테의 카테고리에 앞으로 무엇이 더 추가될지 두고 볼 일이다.


P.R.O.F.I.L.E

성명: 비센테 로드리게스(Vicente Roderiguez Guillen)
생년월일: 1981년 7월 1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176cm, 74kg
포지션: 왼쪽 날개
클럽: 레반테(1997~2000), 발렌시아(2000~)
주요경력: 00/01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01/02, 03/0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우승, 03/04 시즌 UEFA컵 우승, 03/04 시즌 UEFA 수퍼컵 우승, 03/0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올해의 스페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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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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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력 분석은 리그 시작전에 분석한 글입니다. 지금과 상황이 다른 것도 많지만 나름 잘되있다고 생각하고 발렌시아에 대한 전력 분석글은 찾기 힘들어서 올립니다.

스페인 라 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세력을 논할 때, 발렌시아의 이름을 그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스페인 언론들은 사실상 발렌시아를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06/07 시즌의 '3강'으로 분류하고 있다.

베니테스 감독과의 결별 이후 한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발렌시아는 키케 감독 - 베니테스 감독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 과 함께 유럽 무대의 전선으로 복귀, 타이틀 획득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태세다. 물론, 발렌시아에겐 그보다 이전에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시즌에는 어김 없이 4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이른 바 '격년제 징크스'를 극복해야 할 입장에 놓여져 있다.

키케 감독은 라 리가 무대에서는 명장 반열에 오를 준비를 끝마쳤다 할지라도, 아직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는 키케 감독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양한 색깔을 지닌 유럽 팀들과 맞부딪히는 과정, 그리고 리그와 챔스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어려움'들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06/07 시즌은 키케 플로레스 체제의 발렌시아에게 본격적인 '시험의 장'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발렌시아가 06/07 시즌을 통해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만 하는 이유는 '내적'인 문제보다도 '외적'인 환경에 기인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발렌시아 스스로가 챔피언스 리그 경기와 라 리가 경기에 적절히 힘을 배분함으로써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해 나간다 하더라도, 지난 시즌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 비야레알 등과 같은 중·상위권 팀들은 보다 빨라진 페이스로 발렌시아를 추격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결국 발렌시아로서는 다시 한 번 '격년제 징크스'에 대한 우려감을 높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다른 한편으로, 발렌시아는 경험 많은 베테랑들과 젊은 기대주들이 매우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팀이며, 이는 06/07 시즌의 성공이 곧 장기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06/07 시즌은 발렌시아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갖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이며, 여름 이적시장을 통한 '4500만 유로의 투자' 역시 그 비장함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팀 전술 및 베스트 11


[그림: 05/06 시즌 베스트 11(좌), 06/07 시즌 베스트 11 예상도(우)]

아이마르 중심의 4-2-3-1에서 두 명의 스트라이커와 두 명의 날개를 활용하는 4-4-2 시스템으로 전술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팀의 '중심부'에서 변화가 일어난 만큼 전체적인 팀컬러, 플레이를 전개하는 방식, 부분 전술 및 개인 전술 등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키케 감독이 4-4-2 뿐만이 아니라, 실바 중심의 4-2-3-1을 '플랜 B'로서 마련해놓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골키퍼: 카니사레스가 1st, 부텔이 2nd, 모라가 3rd다. 카니사레스의 노익장이 06/07 시즌에도 계속될지 두고 볼 일.

중앙수비: 아얄라와 알비올의 입지가 확고하다. 마르체나, D.나바로, 모레티가 백업요원으로 대기한다.

측면수비: 라이트백 위치에서는 미구엘의 입지가 절대적이며, 백업으로는 쿠로 토레스와 앙굴로가 대기 중이다. 레프트백 위치에서는 델 오르노와 모레티의 로테이션 가동이 예상된다.

미드필드: 알벨다가 중원의 한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에두와 바라하의 치열한 주전 경쟁이 예상된다. 알벨다의 백업으로는 마르체나, 알비올, 파야르도 등이, 에두/바라하의 백업으로는 비아나가 대기한다.

측면공격: 좌 비센테-우 호아킨 양날개 가동이 확실시된다. 왼쪽 백업으로는 가빌란, 레게이로, 실바가, 오른쪽 백업으로는 앙굴로, J.로페스, 실바가 버티고 있다.

포워드: 비야-모리엔테스 투톱이 키케 감독의 신임을 확보하고 있으며, 타바노와 레게이로가 3rd, 4th 공격수로서 대기하고 있다. 실바를 공격형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하는 4-2-3-1 역시 심심치 않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술적 Point 1. 에두의 높아진 비중

4-2-3-1이 플레이메이커를 중심으로 미드필드 장악에 초점을 맞추는 전술이라면, 4-4-2는 보다 속도를 중시하고 역습에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전형적인 두 명의 공격수와 전형적인 두 명의 양날개를 가동시키는 4-4-2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역할이 '창의성'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발렌시아에서는 루벤 바라하에게 그러한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바라하의 패스 정확도, 볼을 순환시키는 능력, 공격에 가담하는 속도 등이 전성기 시절에 비해 상당 부분 쇠퇴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페인 언론들은 아스날에서 건너온 에두를 06/07 시즌의 키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언급하고 있다.

에두는 바라하 만큼 다재다능하고 견고한 미드필더는 아닐지라도, 그라운드 구석구석으로 볼을 뿌려주는 능력 만큼은 탑클래스에 올라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선수다.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 또한 2000년 당시 바르셀로나로 떠난 에마뉴엘 프티 - 템포 조절, 볼배급, 창의적 패스에 있어 '달인'이라 불리울만한 - 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비슷한 스타일의 에두를 영입한 바 있다.

비록 에두가 잉글랜드 프리미어쉽의 빠른 페이스와 거친 몸싸움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프티의 대체자로 에두를 선택한 벵거 감독의 안목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에두는 EPL 무대에서도 자신이 어떤 종류의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간헐적으로는' 증명해 왔으며, 창의적인 패싱게임이 중요시되는 라 리가 무대에서라면 그 재능을 120%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 왔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 아스날의 에두와 첼시의 프티가 경합하는 모습. 감회가 새로웠던 장면이다.]

실제로 에두는 장기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지난 시즌 막바지에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바 있으며, 올 여름 프리-시즌을 통해서도 키케 감독의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바라하로서는 2개월 간의 부상 공백을 딛고 컴백하더라도 에두와 50:50에 가까운, 혹은 조금은 불리할지 모르는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 불가피해져 있다.

전술적 Point 2. 실바 중심의 4-2-3-1

발렌시아가 그 동안 팀의 간판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해 왔던 아이마르를 방출했음에도 불구,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86년생 기대주 다비드 실바가 1년 간의 임대 생활을 마치고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실바의 복귀는 발렌시아가 아이마르의 공백을 100%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 할지라도, 적어도 7~80% 정도는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실바는 지난 시즌 셀타의 UEFA컵 진출권 획득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을 정도로 이미 라 리가 무대에서 검증단계를 끝마친 유망주이며, 올 여름 프리-시즌을 통해서도 그 무서운 성장속도를 실감케 한 바 있다. 실바는 키케 감독의 '플랜 B'(4-2-3-1)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 매우 유력함은 물론, 비야-모리엔테스 투톱을 앞세운 '플랜 A'에서도 심심치 않게 조커로서 활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실바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타바노의 역할이 '비야의 백업'으로 제한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키케 감독이 타바노에게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 예측해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명 1: 실바는 아이마르의 21번 셔츠를 물려받았으며, 발렌시아로부터 '제 2의 아이마르'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물론, 실바를 중심으로 하는 4-2-3-1은 '플랜 A'가 아닌 '플랜 B', 즉 두 번째 옵션으로서 대기한다.

설명 2: 키케 감독이 실바와 타바노 중 누구에게 더 비중을 두게 될 것인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비야와 모리엔테스 중 한 명의 결장이 불가피할 경우 그 대체자로 실바가 1순위일지, 타바노가 1순위일지는 아직 예측해 보기 어렵다.

설명 3: 실바는 공격형 플레이메이커 역할 뿐 아니라 왼쪽·오른쪽 날개 역할도 소화해낼 수 있어 그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선수다.

전술적 Point 3. 델 오르노 vs. 모레티

아시에르 델 오르노는 의심의 여지 없이 키케 감독이 필요로 했던 유형의 영입이며, 미구엘과 함께 공격적인 좌·우 풀백라인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키케 감독이 무링요와 베니테스 못지 않게 수비적인 견고함을 중시하는 지도자이며, 그런 면에서 강한 대인마크 능력과 제공권을 겸비한 모레티의 중요성 또한 쉽게 깎아내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델 오르노는 수준급의 수비적 재능을 겸비하고 있는 측면 수비요원으로서 프리미어쉽 진출 초기에는 공·수 양면에 걸쳐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델 오르노는 최종적으로 무링요 감독의 요구치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했고, 이번 06/07 시즌을 통해 수비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향해 제기되고 있는 여러가지 의문부호들을 불식시켜야 하는 입장에 놓여져 있다. 키케 감독은 공격적인 라이트백 미구엘의 입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델 오르노가 조금이라도 수비적으로 불안함을 노출할 경우 쉽게 믿음을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일부 언론들은 미구엘의 입지가 확고한 오른쪽과는 달리, 왼쪽에서는 델 오르노-모레티의 로테이션 체제가 가동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어 키케 감독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된다.



그림 1: 지난 시즌 발렌시아의 오른쪽 측면 공격을 주로 담당했던 선수는 바로 윙어급 공격력을 갖춘 라이트백 미구엘이었다. 키케 감독은 미구엘의 뒷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모레티-아얄라-알비올로 이어지는 '순간적인 쓰리백 전환 시스템'을 채택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는 아우렐리우에 비해 모레티가 중용되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림 2: 2006 월드컵에서도 포백에서 쓰리백으로 전환하는 수비 시스템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었다. 페케르만 감독의 아르헨티나(그림 위)가 대표적이며, 우승팀 이탈리아(그림 아래) 또한 조별예선 당시 마찬가지의 시스템을 활용했다.

그림 3: 앙굴로에 비해 뛰어난 공격력·돌파력을 갖추고 있는 호아킨이 가세할 경우 미구엘은 지난 시즌에 비해 수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키케 감독이 미구엘에게 '절제된 오버래핑'을 요구할 경우, 수비적인 모레티보다는 공·수를 겸비한 델 오르노가 미구엘과 함께 좌·우 균형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림 4: 미구엘의 오버래핑 빈도를 줄이는 동시에 모레티를 왼쪽에 투입함으로써 수비를 보다 견고히 다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키케 감독이 수비적인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경우의 수다.

- 사커라인 이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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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드의 굴욕

그냥 이것 저것 축구에 관한 소식이나 개인적 의견을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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