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120403000312820&p=khan
(1) '비선'이 움직였다… 영포라인 가동, 권력을 사유화
청와대와 총리실이 참여정부 때도 '사찰'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찰'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찰'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뒷조사를 하는 것으로 불법적인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공무원들의 위법·비위를 감시하는 정당한 활동인 '감찰'과 섞어쓰면서 의미를 혼동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자신의 활동을 말할 때는 '감찰'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참여정부 활동에 대해서는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자료만 놓고 보면 현 정부 청와대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참여정부 당시 조사심의관실(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의 활동은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과 현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국무총리실에 소속된 공직 감찰기구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의 각종 비위나 근무태만을 적발하는 게 주된 업무다. 감찰 결과는 총리실 사무차장(차관)과 국무총리실장(장관)을 통해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국무총리실 지휘계통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전혀 없는 적법한 기구다.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비선'으로 움직였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조직을 사실상 지휘했다. 이 전 비서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지원관실 업무에 관여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의 지시 한마디에 지원관실 직원들이 불법사찰의 증거를 일사불란하게 인멸한 것만 봐도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보고서는 '민정수석 보고용'과 '직보용'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직보용'은 이 전 비서관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또는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을 거치거나 직접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게 정설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밟지 않고 '비선'을 통해 움직였다는 사실은 본연의 공직감찰 업무보다 '비선' 핵심부의 사익을 위해 동원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전 비서관부터 공직윤리지원관실 일반 직원에 이르기까지 '영포라인'이라는 사적 연고로 묶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놓고 초법적 '정권 친위대'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이 '비선'을 통해 움직인 정황은 아직 드러난 게 없다.
(2) 탈법적 수단… 카메라·도청·미행까지 안 가려
정당한 직무감찰은 적법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비정상적 사찰에는 탈법적 수단이 동원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사찰하면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회사의 서류를 압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부부를 사찰하는 과정에도 탈법이 만연했다.
목적상 정당한 직무감찰에 속하더라도 도청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사찰 대상을 도청한 징후가 도처에서 보인다. 예컨대 2009년 5월 사정기관 간부 ㄱ씨의 불륜을 사찰한 문건에는 "(ㄱ씨가) '당신 딸에게 뭘 사주지?'라고 묻자 내연녀가 'ABC초콜릿이면 돼'라고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도청이나 아주 가까운 거리의 미행이 아니고는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직무감찰의 대상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다. 이들의 비위를 확인하기 위해 민간인을 '부수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법원의 판례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과는 관련 없는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사찰했다.
정권이나 실세의 뜻에 거슬렸던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나 민주통합당 김유정 의원도 공무원 비위와 관계없이 사찰 대상에 올랐다. 박용현 전 한겨레21 편집장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삭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폴더에 '연예인'이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정권에 비판적인 이른바 '소셜테이너'들도 사찰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3) 정치적 목적… 친노·반MB·비판언론 옥죄기
감찰은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특정한 행위가 대상이다. 공무원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나 비위를 저지르는 것이 감찰의 대상이다.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이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감찰을 했다는 근거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2010년 검찰 특별수사팀이 공직윤리지원관실 김기현씨로부터 압수한 2600여건의 문건 중 참여정부 때 작성된 '현대차 전주 공장 노조 동향' '전공노 집회 동향' '화물연대 선전전 동향' 등을 예로 들며 지난 정권 때도 사찰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문건을 작성한 주체는 조사심의관실이 아니라 경찰로 파악되고 있다. 조사심의관실이 작성했다고 해도 단순한 동향파악 수준이어서 '사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는 특정 대상과 목적이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청와대 지시로 참여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 임원들을 사찰하며 '사직서 제출' '진행 중'으로 진행 상황을 표시했다. 해당 임원들의 옷을 벗기는 게 조사의 목적이었다.
2009년 8월25일 작성된 '1팀 사건 진행 상황'이라는 문건에는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라는 항목이 나온다. 담당관은 원충연 조사관, 비고란에는 'BH'(청와대) 하명으로 돼 있다. 청와대 지시를 받아 주요 방송 임원진의 교체 '방향'을 작성해 보고한 것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하명사건처리부'를 보면, 이 조직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사찰한 대상은 친노·반MB·반이상득·비판언론으로 요약된다.
(4) 증거 없애기… 불법을 불법으로 은폐 수사 방해
조사의 주체나 목적·방식·대상을 종합 분석해보면 현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했다. '비선'의 지시를 받아, 현 정권과 실세의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때로 탈법적 수단을 동원해가며, 공직자·언론인·기업인·정치인을 무차별 사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남경필 의원 사찰 건에는 이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조사심의관실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사건은 크게 '불법사찰→2차 가해→증거인멸→수사 방해→사후 입막음'의 다섯 단락으로 나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종익 전 대표를 불법 사찰한 뒤 이 사실이 탄로나자 '물타기'를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여당이 합작해 김 전 대표에 대한 음해공작을 펼쳤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청와대 지시로 총리실 자료를 불법 파기했다.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 수위를 조절하는 과정에 개입한 정황도 보인다.
증거인멸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청와대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돈과 취업으로 매수하려 한 정황도 나왔다. 위법을 위법으로 덮으면서 사태를 눈덩이처럼 키운 셈이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서 비롯된 총제적 '국기문란' 사건을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참여정부 때의 사찰 문제와 대등한 수준에 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의 '몸통'으로 밝혀진 청와대·총리실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진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대응에 나선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 기본적 윤리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