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입맛대로 만나고, 말하고, 알리는 ‘이상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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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 중인 ‘소통’이 ‘이상’하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겠다”며 각계 인사와 접촉하고 있지만, 정작 만나야 할 ‘광장의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을 메우고 있는 직장인, 학생, 주부, 노동자 등 민초의 소리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각계 원로들과의 간담회도 여론 청취보다는 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자리로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또 이 대통령과 종교계 지도자 간담회 등을 언론에 전달하면서 첨삭을 하거나 부실한 브리핑을 해 ‘알리고 싶은 내용만’ 전하려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종교계등 잇단 면담… “요식행위” 지적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각계 원로들을 두루 만나고 있다. ‘쇠고기 파문’과 관련해 여론을 청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지난 7일에는 기독교계 지도자와, 지난 6일에는 불교계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지난 5일에는 현승종 전 국무총리를, 그 즈음에는 안병만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만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비공개리에 여러 분들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며 “바깥의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8일에도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국정 쇄신책을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며 “9일에도 미리 정해진 천주교 지도자 간담회 외에는 다른 일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일련의 간담회를 일종의 ‘요식행위’나 ‘통과의례’로 여기는 듯하다. 각계 인사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고, 한반도 대운하 포기 등을 건의했지만 이 대통령의 인식이나 입장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를 탓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대통령이 진행 중인 ‘소통’의 더 큰 문제점은 정작 만나야 할 사람들과는 얼굴을 맞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9일로 예정됐던 ‘국민과의 대화’까지 미룬 만큼 더더욱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장을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 청와대는 그럴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만명의 국민이 왜 72시간을 잇따라 촛불을 들었는지 귀담아 들어보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대통령에게선 “(촛불집회가)세상을 밝게 하려고 그런 점도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면서도 “학생들이 가담을 하고 있어 걱정이다”와 같은 촛불집회를 ‘학생운동’의 관점에서 보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제한적·소극적 소통’은 야당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청와대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회동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는 이 같은 얘기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할 때 주변 상인 등을 3000번 이상 만났는데 이번에는 그 같은 노력의 100분의 1도 안보인다”며 “진정한 소통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재영기자>

재협상 주문엔 “자율규제”만 되풀이

이명박 대통령은 불교계·기독교계 지도자 간담회에서 ‘듣기’ 못지 않게 ‘말하기’에 비중을 뒀다. 국민이 요구하는 쇠고기 재협상에 따른 파장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때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불교계 인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중국 방문 성과를 한동안 설명했다. 방중 기간 중 ‘상당한 환대’를 받았고, 쓰촨성 지진 피해 지역 방문 제의에 중국 측이 놀라면서도 기꺼이 수용했다는 얘기도 했다.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쇠고기 재협상을 적극 검토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스님들의 건의에 거듭 재협상의 어려움과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며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입 자율 규제’가 재협상에 준한다는 점을 거듭 주장했다. 야당이나 학계, 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자율 규제의 문제점은 외면했다.

7일 기독교계 지도자 만남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등이 “자칫하면 촛불시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재협상을 시작하면서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 다음에 안되면 안되는 대로 차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면서 선 재협상을 거론했지만 이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는 발표할 때 어떻게 문제가 될지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세와 소통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협상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대국민 홍보 및 설득 부족으로 ‘촛불집회’의 원인을 돌렸다. <김정선기자>

靑, 민감 부분 빼고 ‘반쪽 브리핑’ 남발

청와대에선 8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불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촛불집회와 관련해 ‘친북 좌파의 촛불시위 주도’ 운운했다고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서였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당시 발언 녹취록을 확인하고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실은 청와대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청와대가 당시 브리핑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충실히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청와대가 모든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정보 독점’에 따른 ‘선택적 브리핑’의 폐해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6일 2시간 동안 계속된 불교계 원로 간담회에 관해 브리핑을 했지만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뺐다. 이 대변인이 뒤늦게 공개한, “한총련의 학생들이 가담을 하고 있어 걱정이다”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대학생들의 촛불집회를 ‘반정부운동’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이었다.

청와대의 ‘입맛대로 브리핑’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내용을 간단히 브리핑한 것은 비근한 예다.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주로 심기일전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잘하자는 자성의 분위기였다”며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회의를 단 몇 마디로 압축해 전했다. 이 대통령이 당시 모두 발언을 통해 내부 회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철저한 보안과 입 단속을 강한 톤으로 강조한 대목 등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고, 피하고 싶은 것은 피한 셈이다.

<최재영기자>
Posted by Kelly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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